조병화 시인은 자기를 버리려 시를 쓴다고 하셨다. 하늘에 떠도는 고독을 시로 쓰고 가신 시인을 늘 그리워한다. 가끔 나홀로 살아 갈 용기가 없음을 느끼는 것은 나이 탓일까? 나의 부재, 진정한 내가 누구일까, 내 한 생의 의문이기도 하다. 옛날 그대로 / 지금 그대로 / 다가올 미래도 그대로 용감히 맞서 살아 갈 용기는 없는 것일까…. ‘나이 듦의 즐거움’이란 주제의 책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지금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오늘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진정한 나로 살아 갈 용기 찾아 새 길을 떠나는 남은 인생 여정이기도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일보다 타인을 염려한 탓인지 “혼자 그 큰 집에서 못산다. 작은 아파트로 이사하라.” 한마디씩 거든다. 한국인의 특성인지 모르지만 가끔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인 에머슨은 ‘자기 신뢰’라는 글에서 자기 자신의 신뢰감이 행복의 근원임을 말하고 있다. 나 다움의 나, 내속에 나를 찾는 일이 행복의 근원이다. 나의 나약함, 불안정함, 부족함도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내가 나에게 가는 길이다.
‘홀로 선다’는 것은 비판과 세상 의혹 속에서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나의 용기이기도하다. 타인이 내 인생에 주인일 수 없다.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일은 나 자신속에 속한 일이다. ‘나는 가짜인가’ 라는 주제의 시를 쓴 적이 있지만 자신속에 나를 찾아가는 일은 생애에 가장 힘든 일이기도하다. 하늘 아래 내가 진짜라 말할 사람이 있겠는가, 6척도 못된 나 하나를 끌고 당당히 살아간 인간은 어쩌면 우리 모두 짠한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우리 모두는 특별한 하늘 은총 아래 산 사람들이다. 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한 생의 화두가 발등에 떨어졌다. 지금까지 진정 네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었나…. 뒤로 미루고 자식 사랑 때문에 나를 살지 못했던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솔숲에 싸여 숨어 있는 나의 집을 새롭게 고치자. 한잔의 차를 마실 수 있는 낭만의 멋진 찻집을 꾸몄다. 정원에는 바위들을 심고 한 식구처럼 침묵의 눈길을 나눈다. 솔과 바위는 금상첨화다. 밤 사이 별들이 몰래 다녀 갔는지 분꽃 사이 벌 나비가 행복한 하루를 연다. 집과 정원이 하나되어 상쾌한 바람이 스치네 -- 하늘, 바람, 새소리가 하나되는 꿈에 그리던 집을 만들자.
한번 뿐인 내 생애에 얼마나 아름다운 선물인가? 죽으면 끝나는 나의 생애 진정한 내가 살고 싶었다. 자기 사랑, 내가 태어날 때 하늘이 허용하신 선물이다. ‘WELL BEING, WELL DYING’ 같은 의미이다. 사랑은 온 우주의 끌어당김의 법칙, 태어날 때 우주의 어떤 힘이 작용한 것이라 한다. 무엇을 걱정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더 사랑할 것인가를 고민하자. 서로 다르지만 같은 시대, 인류의 공동체로 아픔도 신뢰도 함께하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나, 광야에 홀로 서있는 나를 사랑하자.
무엇보다 귀한 것은 ‘마음을 본다’는 것은 온 우주의 기운을 사랑으로 껴안는 일이다. 어느 날 큰 스님께 “무엇이 참된 깨달음인가요?” 묻자 “좋은 사람 하나되는 거다”라는 그 말씀이 큰 깨달음이었다. 천하의 모든 것을 다 가져도 ‘좋은 마음 하나’보다 귀함이 없다.
아침에 뜰에 나가 꽃들이 피고 지는 것을 보고, 꽃밭에 초대된 내가 꽃들이 좋아한 그 사람이 되는 일이 행복이다. 하늘에 구름이 예술가가 되어 흐르고, 한지에 먹물을 풀어 그림 한점 그릴 수 있는 작은 행복이 당당히 홀로 살 수 있는 내 삶의 행복이다. 인생은 내 생각대로 쓰여진 운명의 창조자이다. 존재와 부재 사이, 부와 가난도 상상속에 자유의지 속의 창조물이다. 온 우주는 당신의 원함의 반응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당신은 신의 의지 속에 당신이 원하는 그대로 반응하고 축복한다.
당당히 당신 생애를 좋은 마음 데리고 하늘 나는 백조처럼 홀로 설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살자. 당신은 날개 없이도 마음먹으면 하늘 나는 천사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