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없는 커뮤니티가 있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한 때 오렌지카운티의 리틀 사이공이었다. 지금은 가든그로브 한인타운에까지 상권을 넓혔지만 처음 웨스트민스터 시를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베트남 타운에는 은행이 거의 없었다. 대신 쌀국수집과 금은방이 각각 수 십개 소에 달했다.
가까운 해병기지인 캠프 팬들턴을 거쳐 이곳에 정착한 보트 난민 출신의 베트남 초기 이민자들은 은행을 믿지 않았다. 전쟁 통에 겪은 경험 때문이었다. 언제 휴지조각이 될 지 모를 돈보다 금을 선호했다.
리틀 사이공의 보석상에서 만든 금 제품은 파리, 텍사스 등 세계 각처에 형성되기 시작한 베트남 난민촌에서 명성을 얻었다. 순도와 품질에서 인정을 받았다. 리틀 사이공 산 금딱지는 집에 보관했다. 침대 밑에 숨겨 두거나 육류와 함께 냉장고에 얼려 두기도 했다.
이를 노린 베트남 갱단의 주거침입 강도가 성행했었다. 한동안 미국 언론은 ‘주거침입 강도’를 설명하는데 애를 먹었다. 영어에 맞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도를 뜻하는 robbery는 은행 등 상가를 노린 강도를 말한다. 전통적인 미국 강도는 가정집을 노리지 않는다. 뒤져봐야 현금도 없고, 특히 총을 소지한 가정이 많아 위험도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신문 중에는 이런 가정집 강도를 ‘아시안-스타일-주거-침입-강도(Asian-style-home-invasion-robbery)’라는 긴 말로 설명한 매체도 있었다.
리틀 사이공에 한인이 운영하는 세이빙스 & 론, 저축은행이 진출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하필 그 은행이 감독당국에 의해 강제로 영업을 중단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음날 은행 앞은 예금을 인출하려는 고객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역시 은행은 믿을 곳이 못됐다. 중국계 은행들이 본격 진출하기 전까지 리틀 사이공은 볼사 길의 한 곳을 제외하면, 한동안 은행 없는 커뮤니티를 유지했다.
미국에 은행 없는 커뮤니티가 생각보다 많다. 센서스 트랙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체국은 있지만 은행이나 크레딧 유니온, 신용조합마저 없는 곳이 전체의 4분의1 가까이 된다. 인구조사의 단위가 되는 센서스 트랙은 미 전국에 모두 7만3,000여개. 인구 4,000명을 기준으로 나누기 때문에 대도시는 몇 블락이면 되지만 외곽으로 나가면 한 트랙이 수 십 평방 마일에 이르기도 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센서스 트랙에 우체국은 있으나 커뮤니티 뱅크가 없는 곳이 69%, 크레딧 유니온도 없는 곳까지 더하면 75%에 이른다고 한다. 은행 구좌 없이 살고 있는 미국인은 2,1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은행 없이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체크로 월급을 받아도 쓸 수가 없다. 조세 공과금이나 신용카드 납입금을 보내기도 어렵다. 체크 북이 없기 때문이다. 체크를 받을 때마다 페이데이 렌더나 체크 캐싱을 해주는 업소를 찾아 현금으로 바꿔 쓸 수밖에 없다. 물론 비싼 수수료를 내야 한다. 주로 저소득 주민이나 유색 이민자들이 이런 금융 서비스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런 곳에서는 우체국이 간이 은행역을 해 주면 어떨까. 은행 보다 훨씬 넓은 지역에 퍼져 있어 근접성이 높다. 일부 연방의원들은 크레딧 유니온과 작은 커뮤니티 은행, 아니면 우체국에 무료 예금구좌를 개설해 이용할 수 있게 하라고 연방준비제도를 압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10~1967년 사이에 다양한 형태의 ‘우체국 은행(postal banking)’이 운영돼 왔었다. 연방정부가 이를 없앤 것은 은행권의 압력과 설득에 의해서였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에서는 아직 우체국 은행이 인기라고 한다.
‘우체국 은행’을 우선 시험 운영해 보자는 소리가 커지고 있다. 의회에 600만달러의 소요 예산을 배정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 요즘 같은 때 굳이 은행업무를 하는 기관을 늘리기 보다 온라인 뱅킹을 확대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은행도 외면한 지역은 미국에서 인터넷 인프라가 가장 열악한 곳. 온라인 뱅킹이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