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취임 후 바이든 대통령은 줄기차게 서명만 하는 모습이다. 취임식 당일에만 17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이후 날마다 새로운 행정명령 서명의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대통령 업무 중 가장 힘든 건?”이라는 질문에 “손에서 경련이 나는 것”이라고 펜을 손에 잡은 바이든이 웃으면서 대답하는 장면이 시사만평으로 나왔을 정도이다.
그런데 TV로 바이든의 서명 장면을 보다보면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왜 매번 펜을 바꿔서 서명하지? 한번 쓰고 난 펜은 어떻게 하나? 그냥 버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책상 한쪽에는 깨끗한 새 펜들이 박스 안에 가지런히 가득 담겨 있고,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할 때마다 펜을 바꾸기를 반복한다. 같은 펜으로 계속해도 될 것을 왜 번거롭게 자꾸 펜을 바꾸는 걸까?
“그것이 백악관의 전통”이라는 게 답이다. 대통령의 서명과 관련해 백악관에는 두 가지 전통이 있다. 첫째, 펜을 매번 바꾼다는 것, 둘째, 크로스(Cross) 펠트팁 펜을 사용한다는 것.
사용하고 난 펜은 버리는 게 아니라 관련 법안 추진에 힘쓴 사람들에게 기념품으로 증정하는 것이 또한 전통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념비적 법안 서명에는 수십 개의 펜이 동원되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1964년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민권법 서명식. 존슨은 무려 70여개의 펜을 사용했다. 이들 펜은 법안 작성 의원,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에게 나누어졌다.
펜이 반드시 법안 관련인사들에게만 선사되는 것도 아니다. 존슨은 1964년 세제개혁법 서명 후 펜 4개를 들고 전임 케네디 대통령 가족을 찾았다. 재클린 케네디 여사, 어린 존-존과 캐롤라인 남매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한 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에 기증했다.
최근에 많은 펜을 사용한 대통령은 오바마. 오바마케어 법안 서명식에서 오바마는 22개의 펜을 사용했다. 그때 그가 사용한 펜이 크로스 센추리(Century) II. 지금 바이든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펜이다.
A.T. 크로스는 미국 최초로 고급필기구 제작을 시작한 회사로 미국의 대표적 명품 펜 브랜드이다. 올해로 창립 175주년을 맞는 크로스 펜이 백악관의 단골 필기구가 된 것은 1970년대부터. 제럴드 포드, 로널드 레이건, 조지 H. W. 부시가 크로스 펜을 썼다고 크로스 사의 마이클 폴리 사장은 말한다.
이어 크로스 펜이 대통령 서명용 공식 펜으로 정해진 것은 빌 클린턴 때부터. 이후 크로스 사는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특별 펜을 제작해 백악관으로 보냈다. 클린턴과 조지 W.부시가 즐겨 쓴 펜은 크로스 타운전드(Townsend) 펜. 오바마도 처음에는 이 펜을 쓰다가 나중에 센추리 II로 바꾸었다.
매사에 파격적이기 좋아하는 트럼프는 필기구 전통도 무시했다. 처음에는 전임자처럼 센추리 II 펠트팁 펜을 쓰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 사인펜인 샤피(Sharpie)로 바꾸었다.
대통령은 매끄럽게 잘 나가는 좋은 펜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매일 서명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1952년 2월 20일 일기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편지와 공식 문서들이 산더미 같아서 하루에 600번 서명했다고 썼다. 그렇게 4년 지나고 나면 손에서 경련이 나는 정도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