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열풍’이란 말이 이 시대만큼 화자된 적도 없었던 듯하다. 지구상 인류가 한결같이 팬데믹 방역의 일환인듯 생필품 사재기 열풍을 도발시킨것도 의외였다. 화장지에 덩달아 손비누, 육류에 까지 품절로 동이 났다. 인간을 미리 준비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유행에 따른 상식이나 소식을 미처듣지 못하면 대화에 끼이지도 못하는 기현상이 만연한 탓에 골고루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살아야하는 부질없는 피곤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무언가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과 불안감을 안고 초조하게 살아가고들 있다. 건강보조 식품이며 면역력을 높이는 영양제라면 분별없이 열심을 낸다. 인간 욕심은 태초부터 금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끝없이 채우려는 욕심은 본능적인 것이라 인간이 존재하는 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내려놓음의 충만과 비움의 보람이 겨울 숲에서 넘처난다. 빈손으로 가벼울대로 가벼워져도 당당한 나목의 굳건함을 본받으라 한다.
움켜 잡으면 추함이요, 놓지 않으면 빼앗기는 것이 되고만다. 나누지 않으면 썩어지는 것을. 해마다 한 번씩 온전히 자신을 비워내는 나목의 울림이 고고하게 번져난다. 가진게 없노라는 자랑이, 모두 모두 다 놓아두고 떠나야할 준비가 되었느냐는 물음으로.
수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탐욕은 멈춤없는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비움의 역사는 욕심의 그림자 곁도 밟지 않거니와 드러냄도 없으며 비움의 미덕을 과시하려는 시도조차 않음이라서 비움은 음지의 식물처럼 은은한 꽃피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비움의 보람은 비워낼수록 가벼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울수록 사유의 샘은 더 깊고 오묘한 향을 분출하며 고요한 여운으로 번져난다. 비움 곁엔 욕심이 또아리틀 기회를 엿보고 있지만 비우기로 일관하는 자에게는 눈빛만 보아도 근접할 수 없는 단호함과 당당함이 있기에 욕심에 길들여진 범인으로선 흉내낼 수 없는 의엿하고 심오한 경지를 엿볼 수 있다. 욕심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욕심에 인박히고 중독을 부르는 욕망의 늪도 그 깊이를 모른다.
비움의 실천 시금석은 최선의 필수적인 것과 불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어떤 것인지를 분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생활 공간도 잘 비워야 공간 기능을 최적화할 수 있다. 비우지 못하고 쌓아두기만 한다면 부패는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생각도 마찬가지. 문명의 발달로 최상의 편리함을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이지만 마차를 타고 다니던 그 시절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지 않은 사유가 무엇일까. 소유와 행복은 비례하지 않는다. 여행 가방을 채울 때마다 가방이 가벼울수록 여행은 편안하고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움의 진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 이상의 것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영원한 나의 것은 하나도 없다. 빈손으로 태어났기에 빈손으로 떠나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채움이 즐거움인 삶이 있듯, 비움의 보람은 신선하고 비범한 채움을 위한 준비과정의 평안까지 안겨준다. 보이는 것만이 다 보는 것이 아니듯 비움을 시도해본 자와 전혀 시도 해보지도 않은 자의 생각이 근소할 것 같지만 근원부터 은밀히 다른 길이다. 비움의 보람을 향하는 시선은 순결하다. 비움이 끼치는 영향력은 기온이나 습도와 비견된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구에게나 거리낌없이 다가가서 훈훈함을 전달하는 복사열 에너지처럼.
비움을 위한 첫 단초로 관계의 돌다리 두들기기를 시작해보려 한다. 관계의 탄성은 낮은 자리를 먼저 점령하는 것이 관건이다. 인간은 낮아지려는 것보다 높아지려는 본능을 지니고 있기에 낮은 자리를 선택한다는 것은 실천 의지의 동기부여로 쉼없는 훈련이 요구된다. 낮은 자리에 머무르는 익숙함에 젖어들다보면 삶의 소중함과 진정한 기쁨을 발견해가는 기적의 매력을 덤으로 얻게된다.
비움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의 기억과 생각과 심령 속에 들어와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비움 자체가 스위치를 켜고 끄는 전등처럼 원할 때에 빛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나 빛 속에서나 비움은 명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버림을 실천하는 순간 한없이 심플해진다. 살던 집을 비우고 이사를 하게되면 비움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듯. 비행기가 위기에 처하면 항공유를 공중에 쏟아버린다. 폭발 가능성을 줄이려는 시도이다. 선박도 위기에 빠지면 생명과 직접적인 것 외에는 화물까지도 버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사물마다 사연마다 호불호와 추억이 있기 마련이라 추억에 젖다보면 비움의 여백찾기에 소홀해지고 유아무야 흐지부지에 빠지기 쉽다. 비움의 보람은 간직해야할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해내는 것이었다. 비움의 보람을 익혀갈 수 있는 나목의 계절, 깊어가는 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