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첫광고
김성희 부동산
이규 레스토랑

[애틀랜타문학회 2020문학상 공모 수필 최우수상]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1-18 14:14:00

문학회,문학상,2020,수상작,최우수상,벤자민,장유선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가을이다.

따뜻한 커피에 그리운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나는 크림을 넣고 향기를 맡는다.

서서히 가라앉는 하얀 분말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뭇잎처럼 진한 갈색으로 검은 커피를 채색한다. 마치 내 검은 속눈썹 아래 빼곡히 박혀있는 아버지를 닮은 갈색 눈동자처럼.. 마흔의 끝자락에 왔다.

매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마흔 끝에 나는 한기를 느낀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항상 만져지는 부모님의 상기된 얼굴이, 아마도 이맘때 내 나이 언저리였을 것이다.

별다른 수입은 없었지만 비행청소년 구제에 매일 분주했던 아버지와, 달구지에 이제 갓 추수한 농부의 땀방울을 지게로 담아내며 쌀로 돈을 사셨던 어머니.

그 추운 하루하루 살아내며, 겨울 밤이 깊어갈 무렵 어머니가 누렸던 최고의 호사는, 구들장에 앉아 동전 몇 푼 쥐고 화투를 치는 것이었다. 호랑이띠였던 어머니는 회초리를 마다하지 않고 육남매를 모두 가르쳤다. 뙤약볕에 가을 곡식처럼 단단하게 여문 고단함을 화투에 실어 힘차게 패대기 치고 싶으셨을 게다. 열린 문틈으로 빼곡히 내다보는 막내 아들에게 얼른 동전 하나를 꼭 쥐어 주시던 엄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오락실에서 한참 게임 중에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우리 아들 백발백중이네!”

깜짝 놀란 나에게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동전 몇개를 건넸다.

막내에게 매 한번 든 적 없는 아버지는 내 군입대 전에 암 투병을 하셨고, 두 달여간 병원의 조그만 벤치에서 나는 숙식을 해결하며 아버지와 지냈다. 입대 후 휴가를 얻어 버스를 세번 갈아타고 여덟 시간 만에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아버지는 세시간 째 삼거리에서 막내를 기다리고 계셨다.

서른에 유학을 떠나던 날, 큰절을 받던 아버지는 크게 우셨다.

그후로 몇 년이 지나고 치열하게 학위를 끝마칠 즈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학위를 마무리 한 나는 깊은 우울함에 빠져 들었다.

잠을 자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갔고, 나의 삶과 아버지의 죽음이 엉킨 쳇바퀴는 끊임없이 나를 맴돌며 쉬이 놓아주질 않았다.

그렇게 두 세 달간 야위어 가던 어느 날 이었다.

어머니는 막내가 다 죽어간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깜박 잠이 들었었나 보다.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순간에 잡아 주셨던 따뜻한 손 그대로였다.

그날 처음으로 네 시간을 잔 나는, 차갑게 눌러 붙은 검은 그림자를 녹여내고 나의 삶에 다시 뜨거운 빛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교수로 임용되고 연구와 수업으로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이었다.

열여섯에 집 떠나와 한번이라도 발 뻗고 잔 적이 있나 싶다.

문득 학교에서 돌아와 아내를 기다리는 중에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돌아가신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셨다.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

서늘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 무거운 저녁 놀이 스산하게 늘어지고 있었다.

막 입에 넣은 알사탕을 똑 떨어뜨린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몇 년 후면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된다.

그래서 마흔의 끝자락이 나는 두렵다.

그 나이는 시간과 공간을 웜홀처럼 뒤틀어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나를 같은 시공간 안에 묶어 놓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곳을 통해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처럼 아버지가 돌아와 젊어질 수 있다면 내가 여든의 몸이 되어도 좋겠다.

나는 바람처럼 떠날 수도 있겠다.

 

[애틀랜타문학회 2020문학상 공모 수필 최우수상]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
[애틀랜타문학회 2020문학상 공모 수필 최우수상]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세입자가 다쳤을 때, 집주인은 어디까지 책임질까?

[애틀랜타 칼럼] 자기 만족에 가치를

이용희 목사 찰스 스웹의 주물 공장은 언제나 적자를 면치 못했습니다. 공장 시설도 뛰어났고 유능한 공장장을 채용했지만, 이상하게 생산 실적 자체가 극히 저조했습니다. 그는 공장장을

[전문가 칼럼] 노년층이 반드시 알아야 할 메디케어 사기: 일상 속 실제 경고 신호

전국 아시아 태평양 노인센터 (National Asia Pacific Center on Aging, NAPCA) 메디케어 사기는 명세서에 찍힌 낯선 금액, 한 통의 전화, 혹은 주

[법률칼럼] 9월 이민법 대전환, 낡은 서류 한 장과 성급한 출국이 운명을 가른다

케빈 김 법무사 미국 이민 행정이 9월 중순을 기점으로 빠르게 바뀐다. 이번 변화는 단순히 신청서의 날짜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다. 취업허가와 체류신분 신청 양식이 동시에 교체되고,

[행복한 아침] 게으름 변명

김 정자(시인 수필가)   나이든 어르신들 모임에 곱게 차려 입은 할머니 한 분이 합류를 하게 되었다. 여든도 한참 접어든 연세 신데 완벽에 가까운 메이커 업에 화사한 옷에 귀걸이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신실한 삶의 모습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신실한 삶의 모습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삶의 매 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이 듦의 현실에서 냉철한 사고의 체계와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균형을 지녀야 하리라.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3)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3)

18세 자녀의 쇼셜시큐리티 혜택 연장과 학생 재학 보고(SSA-1372-BK) 가이드18세 도달 시 연금 중단 방지법, 풀타임 고등학생 자격 유지 및 학교 인증 절차 총정리 천경태

[신앙칼럼]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 (Superficiality of Carpe Diem, 로마서Romans 8:20)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윤동주는 그의 시 〈소낙비〉에서 '카르페 디엠의 피상성(Superficiality of Carpe Diem)'에 관한 시대정신을 단 몇

[시와 수필] 숙명여대 조지아 동문회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회장) 50년 전 꽃 같던 우리가 어느덧 80대 할머니가 되었다. 숙명여대 동문회를 돌아보며 그간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생각하다 혼자 울음을 터뜨렸다.

[삶과 생각] 九 死 一 生 (구사 일생)
[삶과 생각] 九 死 一 生 (구사 일생)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어떤 사람은 한평생을 비교적 편히 살다 가는 행운이 있고 어떤 사람은 파란만장하고 험한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살다 가는 불행이 있다. 인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