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다.
따뜻한 커피에 그리운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나는 크림을 넣고 향기를 맡는다.
서서히 가라앉는 하얀 분말이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뭇잎처럼 진한 갈색으로 검은 커피를 채색한다. 마치 내 검은 속눈썹 아래 빼곡히 박혀있는 아버지를 닮은 갈색 눈동자처럼.. 마흔의 끝자락에 왔다.
매순간을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마흔 끝에 나는 한기를 느낀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항상 만져지는 부모님의 상기된 얼굴이, 아마도 이맘때 내 나이 언저리였을 것이다.
별다른 수입은 없었지만 비행청소년 구제에 매일 분주했던 아버지와, 달구지에 이제 갓 추수한 농부의 땀방울을 지게로 담아내며 쌀로 돈을 사셨던 어머니.
그 추운 하루하루 살아내며, 겨울 밤이 깊어갈 무렵 어머니가 누렸던 최고의 호사는, 구들장에 앉아 동전 몇 푼 쥐고 화투를 치는 것이었다. 호랑이띠였던 어머니는 회초리를 마다하지 않고 육남매를 모두 가르쳤다. 뙤약볕에 가을 곡식처럼 단단하게 여문 고단함을 화투에 실어 힘차게 패대기 치고 싶으셨을 게다. 열린 문틈으로 빼곡히 내다보는 막내 아들에게 얼른 동전 하나를 꼭 쥐어 주시던 엄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오락실에서 한참 게임 중에 인기척에 놀라 뒤를 돌아봤다.
“우리 아들 백발백중이네!”
깜짝 놀란 나에게 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며 동전 몇개를 건넸다.
막내에게 매 한번 든 적 없는 아버지는 내 군입대 전에 암 투병을 하셨고, 두 달여간 병원의 조그만 벤치에서 나는 숙식을 해결하며 아버지와 지냈다. 입대 후 휴가를 얻어 버스를 세번 갈아타고 여덟 시간 만에 마을 어귀에 다다랐을 때,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아버지는 세시간 째 삼거리에서 막내를 기다리고 계셨다.
서른에 유학을 떠나던 날, 큰절을 받던 아버지는 크게 우셨다.
그후로 몇 년이 지나고 치열하게 학위를 끝마칠 즈음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학위를 마무리 한 나는 깊은 우울함에 빠져 들었다.
잠을 자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갔고, 나의 삶과 아버지의 죽음이 엉킨 쳇바퀴는 끊임없이 나를 맴돌며 쉬이 놓아주질 않았다.
그렇게 두 세 달간 야위어 가던 어느 날 이었다.
어머니는 막내가 다 죽어간다고 걱정이 태산이었다.
깜박 잠이 들었었나 보다.
아버지가 손을 내밀었다.
마지막 순간에 잡아 주셨던 따뜻한 손 그대로였다.
그날 처음으로 네 시간을 잔 나는, 차갑게 눌러 붙은 검은 그림자를 녹여내고 나의 삶에 다시 뜨거운 빛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교수로 임용되고 연구와 수업으로 바쁘게 살던 어느 날 이었다.
열여섯에 집 떠나와 한번이라도 발 뻗고 잔 적이 있나 싶다.
문득 학교에서 돌아와 아내를 기다리는 중에 오랜만에 아버지를 만났다.
돌아가신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셨다.
너무 다행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따뜻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
서늘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에 무거운 저녁 놀이 스산하게 늘어지고 있었다.
막 입에 넣은 알사탕을 똑 떨어뜨린 아이처럼 한참을 울었다.
몇 년 후면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된다.
그래서 마흔의 끝자락이 나는 두렵다.
그 나이는 시간과 공간을 웜홀처럼 뒤틀어
그때의 당신과 지금의 나를 같은 시공간 안에 묶어 놓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곳을 통해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처럼 아버지가 돌아와 젊어질 수 있다면 내가 여든의 몸이 되어도 좋겠다.
나는 바람처럼 떠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