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 말이 있듯이 우리 부부는 플로리다에서 10여년 살다가 지난 2월말 애트랜타로 이사를 왔다. 아내와 함께 살아갈 아담한 보금자리를 사기로 결정하고 클로징은 했으나 집주인이 두달 후에나 집을 비워 줄 수 있다고 해서 우리는 부득이 친구집에서 두 달을 먹고 자며 신세를 졌다.
그런데 친구 집 뒤에는 긴 호수가 있는데 매일 아침 10시 정도 되면 호수의 오른쪽 어귀로부터 오리들이 20-30여 마리씩 떼를 지어 마치 해군 순양함들이 바다에서 줄지어 항해하듯이 오리 중에 제일 힘센 놈이 대장이 되어 앞장서고 모든 부대원들이 일렬종대로 친구의 집 쪽을 향해서 북상하다가 어느 날은 옆집으로 또 어떤 날은 친구의 집 뒤뜰로 한 놈 한 놈씩 나무로 방벽을 쌓아놓은 울타리를 뚫고 상륙을 한다. 그리고는 집 주인의 허락도 없이 풀을 실컷 뜯어먹고 또 뒤처리까지 점잖게 하고는 줄지어 유유히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그런데 친구 집에서 정 중앙에 있는 호수의 한 가운데는 원형의 분수대가 우뚝 솟아있는데 정확하게 매일 10시 45분부터 저녁 늦게까지 분수가 솟구쳐 나온다. 우리가 그 집에 머물고 있었던 때는 친구 부부가 주로 뉴욕에 체류하고 있었기에 나와 내 아내는 친구집을 마치 우리 집처럼 독차지하고 수시로 창문을 통해서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멋진 물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지루한 줄 모르고 두 달을 보냈다.
나는 평소에 저 푸른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들에 대해서 호기심이 좀 많은편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수륙 양용으로 대지와 창공 그리고 물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오리는 마치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이 평소에 내가 그리던 선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 생명은 모든 걸 다 가질 수는 없듯이 오리는 뒷걸음질을 할 수 없다는 핸디캡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는 아내와 함께 친구 집을 방문했었는데 친구의 장모님으로부터 아주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에 일어난 사건인데 아침 10시 40분 쯤 창가에 있는 의자에 앉으셔서 평소와 같이 밖을 내다보며 자신의 지나온 긴 인생 역정을 기억 속에서 더듬으며 스케치하고 있었는데 오리 한 마리가 분수대 꼭대기에 않아서 좌우를 돌아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는 장면이 포착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순간 분수가 엄청난 압력을 뚫고 하늘을 향해서 마구 솟구쳐 올랐다. 분수가 오리의 똥구를 정조준 해서 솟구치는 그 위력이 마치 핵폭탄이 터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는지 오리는 기절초풍하여 비틀거리고 날갯짓을 하며 호숫가의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날부터 이변이 발생했다. 거의 하루도 예외 없이 매일 찾아와서 장모님에게 위문공연을 해주던 그 많은 오리들이 며칠째 오리무중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얼마나 경천동지할 만큼 충격을 받았으면 오리가 아예 얼씬도 하지 않는 것일까 하고 우리들은 갖가지 해학적인 추리를 해 보면서 폭소를 터뜨렸는데 장모님 왈, 아마도 저희들끼리 회의를 했거나 소통을 했는데 대장으로부터 위험 금지구역으로 선포되는 긴급명령이 발동 된 것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추측을 하시는게 아닌가. 추측은 자유이지만 문제는 96세 되신 장모님이 더 이상 매일 즐기시던 멋진 공짜 위문공연을 감상 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비극인 것이다. 오리야 똥을 싸고 좋고 매대기를 쳐도 좋으니 제발 다시 돌아 와 주기를 바란다. 오리야 말해다오...
애틀랜타에서
김대원 jkim73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