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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음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6-02-23 09:03:35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마음의 산소마스크를 먼저 쓰라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부는 오만이며 풍요는 타락이라 믿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의 본질은 오직 마음뿐이라 믿었기에, 부를 과시하는 이들에게는 냉소적인 시선을 보냈다. 고결함을 지켜야 한다는 선민의식은 나를 지탱하는 힘이었으나, 동시에 나를 가두는 견고한 감옥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신조의 민낯을 마주했다. 그것은 초라한 내 처지를 가리기 위한 방패였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 열등감이 되지 않도록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무장했던 셈이다. 마음이라는 가치에 집착했던 배경에는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싶은 연약한 자아와, '착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은 어린 마음이 숨어 있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연스럽게 노인 돌봄의 현장으로 나를 이끌었다. 주름진 얼굴 속에서 보이지 않는 진심을 발견할 때마다 삶의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한 할머니를 만나며 나의 세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평생 돈에만 집착해 온 할머니는 중풍으로 몸이 무너진 뒤에도 의심과 독설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와 연민을 오가는 감정의 곤두박질 속에서 내 신념은 무너졌고, 정작 내 마음이 깎여나가는 줄도 모른 채 나는 서서히 소진되어 갔다.

 

갈등의 정점에서 문득 할머니의 생을 짚어보았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물질에만 매달려온 그 집착은, 척박한 세상을 버텨내기 위해 선택한 할머니만의 '성벽'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열등감을 가리려 도덕적 벽을 쌓았듯, 할머니 또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돈이라는 단단한 갑옷을 입어야 했던 것은 아닐까. 할머니의 괴팍함 역시 상처받지 않으려는 자기방어일 거라는 생각이 들자 얼었던 마음이 녹기 시작했다.

 

얼마 전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의 안전 수칙을 듣다가 거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비상 상황에서 산소마스크가 내려오면 노약자보다 ‘반드시 본인이 먼저’ 써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야박하게 들렸던 그 수칙은 지극히 과학적인 진리였다. 맞다. 내가 산소를 공급받지 못하면 결국 곁에 있는 어느 누구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무력감은 그 할머니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음'이라는 가치에 매몰되어, 그 마음을 담는 그릇인 나의 한계를 외면한 것이 문제였다. 과거에는 열등감을 가리려 성벽을 쌓았고, 지금은 책임감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타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강박에 내 마음의 산소마스크는 늘 뒷전이었다.

 

은퇴를 앞둔 이제야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억지 헌신이나 마음의 증명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신선한 산소 한 모금이었다. 내가 먼저 에너지를 회복해야 할머니의 거친 마음도 포용할 수 있음을 이제야 겸허히 받아들인다.

 

내 마음을 우선 돌보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행동이 아니다. 세상을 비추기 위해 내 안의 등불에 먼저 기름을 채우는 일이다. 과거의 내가 벽을 쌓았다면, 오늘의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해 숨을 고른다. 내 마음의 산소마스크를 고쳐 쓰고, 다시 한 번 세상을 향해 깊고 건강한 숨을 내뱉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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