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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미국의 역사이야기 - 제 3당 및 무소속 대통령 후보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19-09-07 16:16:12

칼럼,미국,역사,이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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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흔히 양대정당 제도로 생각되고 있다. 실제에 있어서 그렇다. 즉 1852년 이래 백악관은 4년마다 민주당원이나, 공화당원이 차지해왔다. 그러나, 동시에 이 나라에서는 그 동안에 제 3당과 군소 정당들이 많이 결성되었다. 예컨대, 1992년의 대통령 선거 기간중 에는 적어도 1개주 입후보자 명단에 58개 정당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이런 정당들 가운데는 무관심당(the Apathy), 회고당(the Looking Back), 뉴멕시코 금주당, 무소속 시민당, 버몬트 납세자당 등과 같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정당들이 들어 들어있었다.

일반적으로, 제 3당들은 단일 쟁점이나 일련의 쟁점들을 중심으로 하여 결성된다. 제 3당들은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가지고 있을 때에 가장 잘 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제 3당들은 대통령직은 감히 바라보지 않으면서 자기들의 정치적 및 사회적 관심사를 선전·광고할 수 있는 정강을 추구한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금세기의 가장 성공적인 제 3당 대통령 후보는 공화당원인디어도어 루스벨트였다. 그의 진보당, 즉 '불 무스'(큰 사슴) 혁신당은 1912년에 일반 투표수의 27.4%를 얻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기 후계자로 손수 선정했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대통령에 환멸을 느끼게 된 공화당내 진보파는 루스벨트에게 1912년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획득을 추구하도록 촉구했다. 그는 그렇게 해서 여러 예비선거에거 태프트를 패배시켰다. 그러나, 태프트는 공화당 조직을 조종하여 당의 대통령 후보 指名을 얻어냈다.

그 후 루스벨트 지지자들은 공화당과 결별하고 진보당을 결성했다. 루스벨트는 자기 자신이 '큰 사슴'(bull moose)처럼 원기왕성하다고 선언하면서(이때부터 이것이 정당의 상징이 되었음), "대기업" 규제, 여성들의 선걱권, 누진 소득세, 파나마 운하, 자연보호 등을 정강으로 내걸고 선거운동을 했다. 그의 노력은 태프트를 패배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공화당의 표를 갈라놓음으로써 민주당의 우드로 윌슨 후보의 당선에 도움을 주었다.

사회주의자들, 사회당도 일반 투표수의 6%를 얻음으로써 1912년에 그 최고세에 달했다. 다년간 계속 출마하는 사회당 대통령 후보 유진 뎁스는 운수 및 통신 산업의 공동소유권, 보다 짧은 근로시간, 고용 촉진을 위한 공공 사업계획 등을 주창함으로써 그해에 90만표를 웃도는 표를 얻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폭동 교사 행위로 수감된 뎁스는 1920년 감방에서 선거운동을 했는데, 뎁스나 그의 후계자들이나 1912년에 올린 것과 같은 큰 성과를 올리지는 못했다.

로버트 라폴레트, 또 하나의 진보당원은 1924년의 대통령 선거에서 일반투표수의 16.65를 얻은 로버트 라폴레트 상원의원이었다. 장기간 농민들과 산업 근로자들을 위한 투사였으며, 대기업의 숙적이었던 라폴레트 의원은 제 1차 세계대전 후 진보당 운동을 다시 살리는 주동자였다. 사회주의자들과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혁신당(Bull Moose Party) 잔당은 물론, 농민들 및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라폴레트 의원은 철도와 천연자원의 국유화를 정강으로 내걸고 출마했다. 그는 또한 부유층에 대한 증세와,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강력히 지지했다. 그는 일부 지역들에서 강세를 보였지만, 자기 출신 주인 위스컨신주에서만 승리했다.

헨리 월러스, 진보당은 1948년에 전농무장관이자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 부통령이었던 헨리 월러스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당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잠시 동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상무장관이었던 그는 소련에 대한 트루먼 대통령의 단호한 태도에 반대했기 때문에 파면되었다. 월러스 후보의 1948년의 정강은 냉전, 마셜 계획, 대기업 등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흑인들 및 여성들에 대한 차별대우를 종식시키기 위한 운동을 하고, 최저임금제를 지지하고, 하원 비미활동위원회의 폐지를 요구했다. 그는 그를 지지하던 미국 공산당과의 인연을 끊지 못한 탓으로 인기가 떨어졌으며, 그가 얻은 표수는 일반투표의 2.4%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딕시크래트(미국남부의 민주당 이반파), 사우드 캐롤라이나주의 스트롬 더몬드지사가 이끈 주권 확대론자들, 즉 남부 민주당 이반파들도 이와 똑같은 비율의 표수 밖에 얻이 못했다. 진보당과 마찬가지로, 남부 민주당 이반파도 1948년에 민주당과 결별했다. 그러나, 남부 민주당 이반파는 두드러지게 색다른 단체였다. 그들이 민주당에 반대한 이유는 트루먼 대통령의 냉전 정책이 아니라, 그의 공민권 강령에 있었다. 남부 민주당 이반파 의 주요한 목표는 "주권 확대"를 내세웠지만, 실은 인권분리 정책과 그거을 지지한 "짐 크로우"법(흑인에 대한 인종차별법)을 계속하려는 데에 있었다.

조지 월러스, 1960년대의 인종분규와 사회적 격변은 또하나의 인권분리주의자인 남부(앨라매배마주)의 주지사 조지 월러스가 전국적인 주목의 대상이 되는데 도움을 주었다. 월러스 주지사는 공민권, 자유진보주의자, 연방정부 등에 대한 다채로운 공격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 즉, 1968년에 범미 독립당을 창당한 그는 앨라배마주 주의회 의사당에서부터 그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시작하여 일반투표의 13.5%를 얻었다.

H. 로스 페로, 모든 제 3당은 주요한 정당들과 연방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이용하려고 한다. 그러나 최근의 미국사에서 이러한 감정이 1992년의 대통령 선거 때처럼 강렬했던 때는 별로 없었다. 텍사스 페로는 경제적 상식과 재정 책임에 관한 자기의 메시지를 각계각층의 미국민들에게 주지시킬 수 있는 교묘한 말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페로 후보는 이 나라의 지도자들을 비아냥거리고, 자기의 경제적 메시지를 쉽사리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요약함으로써 어려움 없이 매스 미디어의 주목을 끌었다. 그의 선거운동 단체 "우리는 단합되어 있다"(United We Stand)에는 주로 자원자들이 들어가 있었으며, 재원은 그의 개인 재산이 뒷받침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의 富에 분개하기는커녕, 페로의 사업적인 성공과 그 성공이 특별 이익단체들에게 선거운동 자금을 간청하지 않아도 된 것을 찬양했다.

페로는 7월에 대통령 선거 경쟁에서 물러섰다. 그랬다가, 선거 실시 한 달 전에 다시 그 경쟁에 뛰어드는 그는 그때까지 제 3당 대통령 후보가 얻은 표수로서는 단연 최다표수였으며, 총투표수의 백분율로서는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1912년에 얻은 득표율(27.4%)에 다음가는, 1,900여만표를 얻었다. 변천하는 사회 수년, 아니면 수십년 전에 시작된 미국 사회구조의 변화는 19890년대에 이르러 뚜렷해졌다. 인구구성 성분과 미국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업종 및 기술이 주요한 변화를 하고 있었다. 경제에서 서비스업의 우세 현상은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1980년대 중반기에 50여년 동안 계속되어온 추세가 마침내 절정에 이르러, 미국의 전고용인의 4분의 3이 서비스 부문에서 -예컨대, 소매 점원, 사무직원, 교사, 의사 및 기타 보건 전문직원, 정부 공무원, 변호사, 법률 및 금융 전문가 등으로- 일했다.

서비스 부문 활동은 특정 유형의 과학기술, 즉 컴퓨터의 이용성 및 이용도의 증대로 해서 득을 보았다. 이것은 경제적 및 사회적 추세에 관해서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많은 자료를 수집할 수 있는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가진 정보시대였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연방정부는 군사 및 우주 계획의 일부로서 컴퓨터 과학기술에 상당히 많은 투자를 했다. 1970년대 말엽에 캘리포니아주의 두 젊은 기업인이 자동차 차고에서 일하고 있다가 최초로 널리 시판된 가정용 컴퓨터를 조립하고, 그것에 '애플'(Apple)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이 산업혁신에 불을 붙였다. 1980년대 초엽에 수백만 개의 마이크로컴퓨터들이 미국의 기업체들과 가정에 파고들어갔으며, 1982년에 시사주간지 Time은 그 컴퓨터에 "올해의 기계"(Machine of the Year)라는명칭을 붙였다.

한편, 철강 및 직물 산업과 같은 미국의 "굴뚝 산업"들은 쇠퇴하고 있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도요타(豊田), 혼다(本田), 닛산(日産) -이들의 대부분은 미국에 자기들의 공장을 세웠음- 등과 같은 매우 유능한 日本 자동차 제조업자들과의 경쟁으로해서 비틀거리고 있었다. 1980년에 일본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미국 시장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1980년대 말엽과 1990년대 초엽에 이르러 비로소 미국 자동차 제조업자들은 자기들의 라이벌인 일본 자동차 제조업자들의 비용효과 및 기술 기준에 뒤지지 않기 시작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수입 자동차에 양보했던 국내 자동차 시장의 몫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치열한 경쟁으로 해서 득을 본 자는 소비자들이었지만 -생산비를 줄이려는 고통스러운 노력은 미국 자동차 산업에서의 수천명의 항구적인 실업을 의미했다.

인구 패턴도 변했다. 1946년경부터 1964년까지 계속된, 전후 "베이베 붐" 시기가 끝난 후, 전반적인 인구 증가율은 줄어들었으며, 인구는 보다 높은 연령이 되었다. 세대구성 상태도 변했다. 1980년에 가족세대의 백분율(%)은 떨어졌으며, 미국의 전세대수의 4분의 1은 인척 혈연 관계 없는 2, 3명의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 "비가족 세대"로 분류되었다.

새로운 이민들이 다른 방법으로 미국사회의 성격을 바꾸어 놓았다. 1965년에 개혁된 이민정책은 그 초점을 서유럽으로부터 다른 곳으로 옮겼기 때문에 아시아 및 중남미 지역으로부터 새로 도착한 이민들의 수가 괄목할 만하게 증가되었다. 예컨대, 월남전 직후기에 월남 난민들이 미국으로 유입했다. 1980년에 80만 8,000명의 이민이 도착했는데, 이것은 60년만에 처음보는 최고 이민수였다. 이 나라는 또다시 全세계로부터 들어오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또다른 그룹이 기회 균등을 위한 투쟁의 적극적인 참가자가 되었다. 동성연애자들은 민권운동의 여러 전술을 사용하여 다른 그룹들이 요구한 것과 똑같은 것, 즉 차별대우로 부터의 해방을 추구했다. 흔히 압력이 성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예컨대, 1975년에 미국공무원 임용시험위원회(USCSC)는 동성연애자 고용금지를 폐지했으며, 많은 주들이 차별대우 금지법을 제정했다. 반발이 일어났으며, 동성연애자들을 적대시하는 사건들이 나타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후, 1981년에 인체의 면역체계를 파괴하는 가공할 질병인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가 발견되었다. 에이즈(AIDS)는 성행위나 혈액을 통해서 전염된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일반 국민들도 이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 판명되었지만, 이 질병은 특히 동성연애자들이나 정맥주사약 사용자들이 아주 많이 걸렸다. 1992년에 이르러 에이즈로 사망한 미국인수는 15만명을 웃돌았으며,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는 30만명 내지 100여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에이즈는 결코 미국에만 국한된 질병이 아니었으며, 이 전염병을 다루려는 노력에는 전세계의 의사들과 의학 연구자들이 참가했다. 그들의 초기 성공 중의 하나(주로 미국과 프랑스의 연구 결과임)는 에이즈 병균을 분리시킨 다음, 혈액 공급의 보호를 확실케 하기 위한 실험을 발전시킨 일이었다.

끝맺는말

미국은 대서양안을 껴안고 있는, 세상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한 무리의 식민지들이던 기원 당시부터 괄목할 만한 변화를 거쳐서, 정치분석가 벤 와텐버그의 이른바 "최초의 세계적인 국가"(the first universal nation), 즉 전세계의 모든 국민성 및 인종 집단을 나타내고 있는 약 2억 5,000만 인구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또한 경제적, 과학기술적, 문화적, 인구학적, 사회적 변화의 속도 및 정도가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은 흔히 현대화 및 변화의 선구자가 되는데, 이 현대화와 변화는 점점 더 상호의존적이고, 상호관련적인 세계 속에서 다른 나라들과 사회들에 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미국은 또한 계속성에 대한 의식, 즉 미국 건국 당시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일련의 핵심적인 가치관들을 유지하고 있다. 그 가치관들에는 개인적 자유와 민주적인 정부에 대한 신념, 그리고 만인을 위한 경제적 기회 및 발전에 대한 공약이 들어 있다. 미국이 계속해야 할 과업들은 이 나라와 세계가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 다가섬에 즈음해서, 이 나라의 자유, 민주주의, 기회 등 가치 - 풍요롭고 파란만장한 역사의 유산- 를 보호하고, 번성하도록 다짐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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