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나의 퀘렌시아, 노을을 바라보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9-08 11:15:26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나의 퀘렌시아, 노을을 바라보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누군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혹은 '고독을 즐기는 일'이라 멋지게 표현하곤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사색보다는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긴장을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행위의 반복 같지만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만 같다. 늘 빠듯한 일상이니 쉽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짬을 만들려 시간을 쥐어 짜내는 편이다. 샌드위치를 들고 가까운 공원 호수가를 가거나, 근처 작은 산책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퇴근 길에 노을을 만나면 차를 세워 잠시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는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갈해지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겨울에 마리에타 지역에 있는 대형 매장에 들렀던 적이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찬바람이 불던 날이라, 구매한 물건을 차에 싣자마자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차 안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앞이 탁 트인 주차장 덕분에 야트막한 언덕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꽤 높은 곳이었다. 눈앞에 노을빛에 물든 구름과 석양을 등진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광경이 나타났다. 그 절묘한 노을빛의 조화, 그 환상적인 장관을 어찌 내 필력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으랴.

 

지난주에 그 부근을 지나다가 차를 돌려 그곳을 찾았다. 노을이 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또 계절이 다른 지라,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긴 시간 운전으로 무거워진 다리도 풀 겸 차에서 내렸다. 넓은 주차장 한편에서 여자 혼자 서 있으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 그곳에는 노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던 사람들과 서로 눈인사를 건넸다. 저들도 나처럼 노을을 보러 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노을은 그야말로 참 아름다웠다. 마치 색색 깔의 호청 빨래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빛에 소란했던 하루가 조용해졌다. 지쳤던 마음이 재충전되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곱게 물들이다 순식간에 사그라진 노을처럼 내 생애 마지막도 그리 저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박완서 선생도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썼던 걸까.

 

노을은 나의 ‘퀘렌시아’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안식처 혹은 마음의 고향을 뜻한다. 투우에서 소가 투우사와 마지막 일전을 치루기 전에 힘을 회복하려 숨는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여유로운 쇼핑이나 긴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나이에, 그저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재충전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내 노년의 소심해진 삶이 위로받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거창한 장소가 아니어도,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평화를 얻고 재충전 할 수 있다면 그 순간들이 모두 퀘렌시아가 아니겠는가. 저녁 산책에서 만난 노을 사진을 보내고, 때마다 시를 써서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노을을 배경으로 파도 일렁이는 바닷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스톤마운틴을 오르며 아침노을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그들 모두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즐기고 사는 게 아니겠는가. 

 

혹시 잠시라도 마음이 무겁거나 피곤하다면 지금 창밖을 바라보시라. 신을 신고 나가 동네를 걸어보시라. 아니면 어느 날 해 질 녘 마리에타 배럿 파크웨이(Barrett Pkwy)에 있는 코스코 매장 파킹 장으로 차를 몰고 달려가 보시라.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전쟁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평강의 왕, 예수(God Intervenes In The History Of War: Jesus, The Prince Of Peace, 이사야Isaiah  9:6)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이민자(디아스포라)의 소망은 안정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극한 상황에서 미래 지향적인 소망의 실현이 가능할까?이민자의 삶이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오혜영 씨의 구순 잔치가 많은 지인들의 축하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졌다.축하와 함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나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님의 노래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

[수필] 슬픔의 에너지
[수필] 슬픔의 에너지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여든 네 살 할머니가 스스로 양로원을 찾았다. 남은 생을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덧없이 흘려보내지는 않겠다는 할머니만의 결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떤 책이든 맨 앞의 목차를 훑어보면 전체 윤곽이 보인다. 세부 내용을 모두 읽지 않아도, 어떤 순서로 무엇이 담겨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주택보험도 마찬

[애틀랜타 칼럼]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자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사물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신적 근시와 원시를 경계하고 창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며, 미키모토 고기치의 인공 진주 양식 성공 사례처럼 지식을 행동과 결합해 기회를 포착하는 적극성이 성공의 필수 요건임을 역설한다.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광우 허 영희(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다시 피는 봄,겨울 내내 소중히 품어온 고운 마음살며시 봄바람이 부추기면그 속에 피어난 연분홍 설레임 고이 접어둔 남빛 저고리 꺼내어연분홍 치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이민 생활을 하는 한인 동포들은 한국이나 해외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단순히 계좌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외 금융계좌와 금융자산

[법률칼럼] 밀입국 배우자 영주권, 2026년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2026년 현재 밀입국 배우자의 영주권 취득은 법적 조항보다 심사 강도 강화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엄격한 검증 기조에 맞춰 I-601A 사전면제 신청 시 극심한 곤란(Extreme Hardship)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무분별한 절차 진행보다는 FOIA 기록 확인 등 사전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