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누군가는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 혹은 '고독을 즐기는 일'이라 멋지게 표현하곤 하겠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사색보다는 인간관계를 되돌아보거나,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앉아 긴장을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겉으로 보기엔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행위의 반복 같지만 이런 시간을 갖지 못하면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만 같다. 늘 빠듯한 일상이니 쉽게 시간을 낼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어떻게든 짬을 만들려 시간을 쥐어 짜내는 편이다. 샌드위치를 들고 가까운 공원 호수가를 가거나, 근처 작은 산책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거나. 퇴근 길에 노을을 만나면 차를 세워 잠시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는 정도가 전부다. 그래도 자연의 모습을 바라보고 나면, 마음이 한결 정갈해지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 겨울에 마리에타 지역에 있는 대형 매장에 들렀던 적이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찬바람이 불던 날이라, 구매한 물건을 차에 싣자마자 서둘러 운전석에 올라탔다. 시동을 걸고 차 안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데, 맞은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앞이 탁 트인 주차장 덕분에 야트막한 언덕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산 중턱을 깎아 만든 꽤 높은 곳이었다. 눈앞에 노을빛에 물든 구름과 석양을 등진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진 광경이 나타났다. 그 절묘한 노을빛의 조화, 그 환상적인 장관을 어찌 내 필력으로 온전히 담아낼 수 있으랴.
지난주에 그 부근을 지나다가 차를 돌려 그곳을 찾았다. 노을이 지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고 또 계절이 다른 지라,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긴 시간 운전으로 무거워진 다리도 풀 겸 차에서 내렸다. 넓은 주차장 한편에서 여자 혼자 서 있으면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잠시, 그곳에는 노을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던 사람들과 서로 눈인사를 건넸다. 저들도 나처럼 노을을 보러 왔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노을은 그야말로 참 아름다웠다. 마치 색색 깔의 호청 빨래들이 바람에 휘날리는 듯 하늘을 물들이는 노을빛에 소란했던 하루가 조용해졌다. 지쳤던 마음이 재충전되는 느낌이었다. 하늘을 곱게 물들이다 순식간에 사그라진 노을처럼 내 생애 마지막도 그리 저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박완서 선생도 “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집착 없음 때문이다. 인간사의 덧없음과 사람이 죽을 때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아, 그러나 너무도 지엄한 분부, 그리하여 알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라고 썼던 걸까.
노을은 나의 ‘퀘렌시아’다. 퀘렌시아(Querencia)는 스페인어로 안식처 혹은 마음의 고향을 뜻한다. 투우에서 소가 투우사와 마지막 일전을 치루기 전에 힘을 회복하려 숨는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라고 한다.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여유로운 쇼핑이나 긴 여행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을 나이에, 그저 노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재충전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내 노년의 소심해진 삶이 위로받는 것 같아 참 다행이다.
거창한 장소가 아니어도, 한 잔의 차를 마시며, 하늘을 보며, 떨어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음악을 들으며 마음이 평화를 얻고 재충전 할 수 있다면 그 순간들이 모두 퀘렌시아가 아니겠는가. 저녁 산책에서 만난 노을 사진을 보내고, 때마다 시를 써서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노을을 배경으로 파도 일렁이는 바닷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스톤마운틴을 오르며 아침노을 사진을 보내주는 친구도 있다. 그들 모두 자신만의 퀘렌시아를 즐기고 사는 게 아니겠는가.
혹시 잠시라도 마음이 무겁거나 피곤하다면 지금 창밖을 바라보시라. 신을 신고 나가 동네를 걸어보시라. 아니면 어느 날 해 질 녘 마리에타 배럿 파크웨이(Barrett Pkwy)에 있는 코스코 매장 파킹 장으로 차를 몰고 달려가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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