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8-22 18:35:28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추억은 언제나 아름답다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요란한 자동차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노란 스쿨버스 한 대가 서 있다. 맞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했었지. 밤새 내린 비에 젖은 배롱나무 가지 끝에서 아침 햇살이 반짝인다. 늘 같아 보이는 골목 풍경이지만, 어떤 날은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고 또 어떤 날은 지난날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 입구에서 아이를 데리고 스쿨버스를 기다리는 이웃의 모습은 영락없는 지난날의 나다. 문득,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두 모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졌다. 마지막으로 카메라를 만져본 게 언제였던가.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카메라를 꺼내 보니 렌즈 캡조차 열어보지 않은 채 그대로다. 메모리 카드가 들어 있었다. 컴퓨터에 카드를 꽂자, 오백 장이 넘는 사진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에, 이 귀한 추억들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니.

 

사진들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폭포 옆에서, 호숫가에서, 공원 산책길에서, 바다에서, 그때마다 그 순간을 함께했던 지인들의 모습과 풍경이 빼곡했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얼굴들도 있다. 몇 년 사이 멀리 떠나버린 사람들. 내가 힘들 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소중한 얼굴들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던 건 아니었건만,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하고서야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귀했는지 알게 되는 어리석은 나다.

 

사람들은 흔히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고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한다. 나 역시 지나간 날들을 추억하며 사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새겨진 수많은 순간들, 슬픈 기억은 슬픈 대로, 기쁜 기억은 기쁜 대로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후회나 회한으로 곱씹기보다는 그때의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하다.

 

'므두셀라 증후군(Methuselah syndrome)'이라는 심리 용어가 있다. 성경에서 969세까지 살았다는 최장수 인물, '므두셀라'의 이름에서 유래한 이 증후군은, 과거를 회상할 때 좋은 기억만 떠올리며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심리를 말한다. 불행했던 기억을 행복했던 추억으로 왜곡하는 일종의 현실 도피 성향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이 증후군에 관한 글을 읽다가 "혹시 나도 그런 거 아니야?" 하며 혼자 웃었던 적이 있다. 그럴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지난날의 내 추억은 모두 아름답다. 어쩌면 나도 므두셀라 증후군 환자처럼 좋은 기억만 골라냈을 수도 있지만, 지난날의 기억들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뿐이다. 사랑하고 이별했던 아픈 추억이든, 누군가에게 배신당했던 쓰라린 기억이든,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저 아름답고 애틋한 감정으로 남는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두 지인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새긴다. 이른 나이에 애석하게 세상을 떠난 그들이 그립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기분은 쓸쓸하지만, 그래도 살아있어 나는 그들과 함께했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빙그레 웃음 짓는다. 맞다, 누군가를 사랑했고 또 그 누군가가 나를 사랑했음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옛 추억이다. 그래서 지난 추억은 언제나 아름다울 수밖에 없나 보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전쟁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평강의 왕, 예수(God Intervenes In The History Of War: Jesus, The Prince Of Peace, 이사야Isaiah  9:6)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이민자(디아스포라)의 소망은 안정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극한 상황에서 미래 지향적인 소망의 실현이 가능할까?이민자의 삶이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오혜영 씨의 구순 잔치가 많은 지인들의 축하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졌다.축하와 함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나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님의 노래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

[수필] 슬픔의 에너지
[수필] 슬픔의 에너지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여든 네 살 할머니가 스스로 양로원을 찾았다. 남은 생을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덧없이 흘려보내지는 않겠다는 할머니만의 결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떤 책이든 맨 앞의 목차를 훑어보면 전체 윤곽이 보인다. 세부 내용을 모두 읽지 않아도, 어떤 순서로 무엇이 담겨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주택보험도 마찬

[애틀랜타 칼럼]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자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사물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신적 근시와 원시를 경계하고 창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며, 미키모토 고기치의 인공 진주 양식 성공 사례처럼 지식을 행동과 결합해 기회를 포착하는 적극성이 성공의 필수 요건임을 역설한다.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광우 허 영희(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다시 피는 봄,겨울 내내 소중히 품어온 고운 마음살며시 봄바람이 부추기면그 속에 피어난 연분홍 설레임 고이 접어둔 남빛 저고리 꺼내어연분홍 치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이민 생활을 하는 한인 동포들은 한국이나 해외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단순히 계좌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외 금융계좌와 금융자산

[법률칼럼] 밀입국 배우자 영주권, 2026년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2026년 현재 밀입국 배우자의 영주권 취득은 법적 조항보다 심사 강도 강화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엄격한 검증 기조에 맞춰 I-601A 사전면제 신청 시 극심한 곤란(Extreme Hardship)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무분별한 절차 진행보다는 FOIA 기록 확인 등 사전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