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인간관계에서 낙심할 때마다 오래전 TV 뉴스에서 보았던, 한 부부의 영화 같은 실화가 떠오른다.
어린 손녀와 함께 잠들어 있던 할머니가 한밤중에 괴한에게 살해당했다. 어둠 속에서 범인의 모습을 어렴풋이 본 손녀는 이모부 테드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테드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안타깝게도 알리바이를 증명하지 못했다. 당시 그의 무고함을 믿어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그의 아내 메리뿐이었다.
결국 살인죄로 복역하게 된 남편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메리는 직접 나섰다. 사립탐정 자격증을 취득한 후, 사건 현장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후 그녀는 사건 당시에 할머니 집 근처에 살았던 한 전과자에게 의심의 초점을 맞추었다. 아동 성범죄로 복역했던 그의 진짜 목표는 할머니가 아닌 손녀였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범인의 행적을 쫓던 메리는 그가 현재 남편 테드가 복역 중인 교도소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메리는 남편에게 그 남자가 피운 담배꽁초를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남편이 구해온 꽁초의 타액과 살인 현장의 증거물로 보관 중이던 DNA가 일치했다. 결국 8년 만에 남편의 무죄가 입증되었다.
한 사람의 굳건한 믿음이 진실을 찾아낸 기적 같은 결과였다. 그렇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이든, 누가 뭐라고 하든, 상대방을 향한 나의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다.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누군가를 완전히 믿는 것은 가능하다.” 브레네 브라운의 명언처럼, 믿음은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큼 살맛나는 일이 또 있을까.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믿음'이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웃자고 하는 말이지만, '믿습니까?'라는 말에 '아멘'이 튀어나올 정도로 믿음은 세속적인 의미로 변질된 듯하다.
얼마 전 슬며시 멀어진 지인이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서 얻으려 했던 이득을 채웠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마음이 시렸다. 사람을 알게 되면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내 우둔함도 문제겠지만, 어쩌겠는가? 믿음은 내가 만드는 내 문제라니 말이다.
살수록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일이 점점 더 어렵다. 그래도 내 주위에는 내게 믿음을 주는 이들이 훨씬 더 많다. 내가 힘들어할 때 든든한 바람벽처럼 지켜주는 가족이 있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 일처럼 나서주는 오랜 친구들이 있다. 이들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존재들이다. 내가 사는 동안 행복할 수 있는 건 그들이 내 믿음 안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들이 함께했기에 혼자가 아니었고, 일상을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잠시였지만 등 돌린 친구에게 느낀 실망감 덕분에, 내 삶의 행복함을 다시 깨달았다. 내 곁에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라 믿는 사람들이 있어 마음이 든든한데,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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