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윤 할머니가 손발을 앞으로 쭉 뻗고 앉아 있다. 할머니 손톱을 다 다듬은 중년 남자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톱을 깎기 시작한다. 그는 한 달에 두 번 테네시 주에서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오는 윤 할머니 막내아들이다. 혹여 손놀림 실수로 생살을 벨까 싶어 조심스럽게 요리조리 발톱을 들여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엄숙함마저 감도는 것 같다.
쪼그리고 앉아 발톱을 깎아주는 남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난다. 마치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양로원에 오기 수 년 전부터 치매가 깊어져서 할머니는 가족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몸을 낮추고 발톱을 다듬는 모습을 보는 할머니 웃음 띤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한 가운데로 뜨거운 무엇이 사르르 퍼지는 느낌이 든다.
사랑은 주는 순간 받는 쪽에 저절로 전해지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의 은은한 표정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참 신기하다. 아들의 진심 어린 효심이 전해진 걸까?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치매 어머니의 표정이 마음 한 곳에 박힌다. 늘 굳은 표정이던 할머니를 보며, 노인을 돌보는 이의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 느낀다.
발밑에 펴 놓은 신문지 위로 잘린 발톱 조각이 톡톡 떨어진다. 사실 치매노인의 발톱 손질은 케어기버가 해야 할 일이지만, 가족이 직접 손질해 주면 은근히 반갑다. 떨어진 발톱 조각을 바라보다가 문득, 늙는다는 건 어쩌면 발톱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손톱과 발톱은 모두 몸의 일부지만, 손톱은 늘 살피며 가꾸면서도 발톱은 종종 잊고 지낸다. 어느 날 발톱에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야 들여다보는 게 발톱 아니던가.
문득 내 부모처럼 노인 케어를 하겠다던 초심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력감을 핑계로 짜증을 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은 얼음장 같으면서도, 겉으론 따뜻한 척 연기하며 살아온 지난 기억들이 양심을 쿡쿡 찌른다. 마치 양말 속에 숨겨진 발톱은 외면하고, 드러난 손톱만 예쁘게 가꾸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는지 가만히 돌이켜 본다.
어머니의 발톱을 다듬기 위해 몸을 낮춘 아들의 모습에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고 보이는 게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우친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나와 인연을 맺을 노인들을 내 가족하고 살듯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발톱을 다듬을 때처럼 나 자신을 낮추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느새 내 인생도 훌쩍 흘러갔다. 십 수 년이 지나면 스스로 발톱을 깍지 못할 때가 내게도 올 텐데, 그때 내 앞에는 누가 쪼그려 앉아 내 발톱을 깎아주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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