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수필] 발톱을 깎을 때처럼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8-04 10:20:20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발톱을 깎을 때처럼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윤 할머니가 손발을 앞으로 쭉 뻗고 앉아 있다. 할머니 손톱을 다 다듬은 중년 남자가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발톱을 깎기 시작한다. 그는 한 달에 두 번 테네시 주에서 양로원으로 어머니를 만나러 오는 윤 할머니 막내아들이다. 혹여 손놀림 실수로 생살을 벨까 싶어 조심스럽게 요리조리 발톱을 들여다보는 그의 표정에는 엄숙함마저 감도는 것 같다.

쪼그리고 앉아 발톱을 깎아주는 남자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난다. 마치 그가 자신의 아들임을 알아보는 듯한 표정이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양로원에 오기 수 년 전부터 치매가 깊어져서 할머니는 가족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몸을 낮추고 발톱을 다듬는 모습을 보는 할머니 웃음 띤 얼굴을 보고 있으려니 가슴 한 가운데로 뜨거운 무엇이 사르르 퍼지는 느낌이 든다.

사랑은 주는 순간 받는 쪽에 저절로 전해지는 힘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이름까지 잊어버린 치매 할머니의 은은한 표정은 어디서 비롯된 건지 참 신기하다. 아들의 진심 어린 효심이 전해진 걸까?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치매 어머니의 표정이 마음 한 곳에 박힌다. 늘 굳은 표정이던 할머니를 보며, 노인을 돌보는 이의 진심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다시 느낀다.

발밑에 펴 놓은 신문지 위로 잘린 발톱 조각이 톡톡 떨어진다. 사실 치매노인의 발톱 손질은 케어기버가 해야 할 일이지만, 가족이 직접 손질해 주면 은근히 반갑다. 떨어진 발톱 조각을 바라보다가 문득, 늙는다는 건 어쩌면 발톱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손톱과 발톱은 모두 몸의 일부지만, 손톱은 늘 살피며 가꾸면서도 발톱은 종종 잊고 지낸다. 어느 날 발톱에 불편함을 느끼고 나서야 들여다보는 게 발톱 아니던가.

문득 내 부모처럼 노인 케어를 하겠다던 초심을 잃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무력감을 핑계로 짜증을 내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마음은 얼음장 같으면서도, 겉으론 따뜻한 척 연기하며 살아온 지난 기억들이 양심을 쿡쿡 찌른다. 마치 양말 속에 숨겨진 발톱은 외면하고, 드러난 손톱만 예쁘게 가꾸며 살아온 인생은 아니었는지 가만히 돌이켜 본다. 

어머니의 발톱을 다듬기 위해 몸을 낮춘 아들의 모습에서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고 보이는 게 아니라,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우친다. 앞으로 사는 동안 나와 인연을 맺을 노인들을 내 가족하고 살듯 함께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발톱을 다듬을 때처럼 나 자신을 낮추며 살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을까? 

어느새 내 인생도 훌쩍 흘러갔다. 십 수 년이 지나면 스스로 발톱을 깍지 못할 때가 내게도 올 텐데, 그때 내 앞에는 누가 쪼그려 앉아 내 발톱을 깎아주고 있을까?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어른  다움의 서사

김 정자(시인 수필가)     나이가 들어간다는 말은 내 보이기 싫은 것들이 늘어난다는 말과 동의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름살, 흰머리, 아집, 애착이 은근히 자리 잡기 시작하

[신앙칼럼] 다볼산의 기적 예수 (The Miracle of Mount Tabor, Jesus : 마태복음Matthew 17:1~13)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1. [도입] 붉은 흙 위에 울리는 나지막한 음성앨라배마의 뜨거운 태양 아래, 버려진 돌조각들로 평생 기도의 정원(아베 마리아 그로토)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삶의 균형을 찾는 지혜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삶의 균형을 찾는 지혜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삶의 균형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라는 물음에 앞서 삶의 모든 영역에 불균형으로 질서가 없음을 경험한다. 인간관계의 불협화음에서 파생되는 무질서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9)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9)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과다지급금 회수, 당신의 ‘작은 실수’를 대하는 쇼셜시큐리티의 변화” 천경태 (금융전문가)  공식 발표일: 2026년 5월 11일 (자료 출처: SSA 감사

[삶과 생각]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
[삶과 생각] 소아암 병동의 아이들!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에모리 의과대학 종신 명예교수이자 소아암 전문 의학박사인 문학평론가 아혜 김태형 시인의 글을 읽고 고약한 소아암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추억의 아름다운 시] 밤의 이야기

조병화 고독하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소망이 남아 있다는 거다소망이 남아 있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삶이 남아 있다는 거다삶이 남아 있다는 건아직도 나에게 그리움이 남아 있다는 거다그리움

[수필]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
[수필] 묵묵히 곁을 지키는 일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칠십 대 초반의 한 할머니가 남편을 여의었다. 지금까지 전기요금 내는 일조차 손수 해본 적이 없던 할머니는 매일 아침 남편의 묘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의 Personal Property란 무엇인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의 Personal Property란 무엇인가?

최선호 보험전문인 ‘세간살이’라는 말은 집안에서 사용하는 온갖 물건을 뜻한다. 냉장고, 세탁기, 소파, 침대, TV 같은 큰 물건부터 옷, 그릇, 컴퓨터, 전자제품까지 모두 포함된

[애틀랜타 칼럼] 용서의 힘

이용희 목사 “너의 원수로 인하여 난로의 불을 뜨겁게 지피지 말라. 오히려 그 불이 너 자신을 불태울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말입니다.분노하는 사람은 그 분노로 인하여 자신을 잃을

[박영권의 CPA코너] 투자금인가, 빌려준 돈인가?(세법과 회계 기준에서 바라본 동업 자금의 성격)
[박영권의 CPA코너] 투자금인가, 빌려준 돈인가?(세법과 회계 기준에서 바라본 동업 자금의 성격)

박영권 공인회계사 CPA, MBA 미국 한인사회에서는 가족이나 지인끼리 사업을 시작하면서 계약서 없이 자금이 오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사업이 예상과 달리 진행되거나 상황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