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유년 시절의 신작로는 아이들 소리로 북적대며 소란스럽고 분주했었다. 비포장이었던 골목 길엔 남자 아이들은 말뚝 박기, 자 치기에, 유리 구슬을 한 주먹 쥐고 홀 짝을 맞추는 구슬 따 먹기, 딱지치기로 흥이 났었고, 여자 아이들은 땅 따먹기, 고무줄 놀이며 비석치기로 신명이 났었다. 해 그름이 잦아들면 집집마다 대문이 열리고 아이들을 불러들이는 소리가 골목길에 울려 퍼지면 마을은 어느새 고즈넉한 밤기운이 스며든다. 포근한 유년의 추억은 누구에게나 잃고 싶지 않은 그윽한 향기가 담긴 보옥이라 해두고 싶다. 유년의 어린이 시절은 그리움을 잉태하고 있어 낯선 이방인의 삶을 접고 언젠가는 돌아가고 싶은 곳으로 남겨두고 싶은 생애의 소중한 부분이다.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외면하거나 거부하지 않는 넉넉한 품으로 기다려주는 곳으로, 세월이 흘러도 언제나 평안과 안식이 흐르는 곳으로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은 해맑은 동심이 숨쉬고 있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으로 생의 뿌리로 남겨져 있다. 유년의 동무들이 잊혀지지 않는 것도 삶의 무게로 가리워진 시간 사이로 유년의 맑음이 흐르고 있었기 때문일 게다.
어린이로 지내온 시간은 다시 만날 수가 없다. 아이로 자랄 수 있는 시기에만 오로지 누리며 영위할 수 있는 때 묻음이 없는 천진난만한 순정한 시간들이다. 이렇듯 맑고 청정한 동심을 기성세대 과욕으로 어지럽게 물들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꾸밈없이 깨끗하고 올바른 꿈을 가꾸며 그 꿈을 키워내고 또래 아이들과 공동체 구성원으로 삶의 기본을 몸소 익히며 배우 고 실천할 수 있는 기초적 터전을 닦아가는 일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로 가꾸어 가며 소중 하게 관리되어 야할 부분이다. 하지만 이즈음의 아이들은 부모의 욕심에 이끌려 과도하고 무모한 경쟁에 짓눌리는 희생을 치르고 있는 모습들이 아직 잔재해 있음을 본다. 아이들의 잠재성이나 저력을 발견해주며 이를 양성하고 보살펴주는 바람 직한 보살핌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아이들은 엄마가 모든 것을 결정 해 주는 시대적 피해자로 만들고 있다. 아이들의 생각을 부모의 생각 속에 가두어 두지는 말아야 할 터인데. 난맥상이다.
아이들이 어리다고 무슨 생각이 있겠는가 라는 생각으로 쉽게 치부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도 느끼고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어른들이 미쳐 깨닫기도 전에 아이들은
이미 상처받고 기죽게 되면서 거친 말들이나 행동들이 감정으로 표출되면서 작은 분노들이 생각의 테두리를 만들어가기 시작한다. 부모들은 처음부터 성급하게 자녀의 일상과 생각의 틀과 감정을 다스려가는 과정을 어른 입장에서 어림잡아 판단해서도 안될 것이요, 부모가 아이들의 결정을 함부로 제지해서도 안될 일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서둘러 결정을 내리라고 방법까지 제시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들의 결정을 기다려주며 편하게 이야기를 풀어 내도록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다. 어른의 생각이나 뜻을 비치는 일도 삼가하며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거나 투영하려는 부모의 집착에 아이를 도구로 삼아서도 안될 일이다. 집착을 내려놓고 아이들을 독립된 한 인격체로 인정해 주는 길을 택해야 할 것이다.
어른들의 잘못된 욕구충족이 경쟁심을 유발하고 그 후유증에 어린 아이들이 들볶이고 부대 끼면서 성가신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 사교육이 낳은 무분별한 과장된 질주는 터무니 없는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어린이의 흥미를 발견하고 격려하는 교육이 아닌, 줄 세우기 경쟁 교육은 미래를 위한 창의적인 교육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뛰놀며 기쁨을 나누며 힘든 고비도 넘기는 법까지 함께 공유하며 바람직한 관계를 맺어 나가는 시간들을 함부로 빼앗는 것은 아이들의 앞날에 장애물을 설치하는 일이나 진배 없음이다. 이민 2세로 3세로 살아 가야 하는 아이들의 앞날에 무한 경쟁을 몸으로 부딪히며 스스로 일구어 내도록 길을 열어 주기 위해 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진검 승부가 가늠하게 될 것이다.
고 이 어령 교수님은 한방향으로 달리면 일등은 하나 밖에 없지만 360도 제 각기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이 모두 일등이 될 수 있다’ 하셨다. 세상 최고가 아니라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독창적인 삶을 귀중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할 일이다. 해 맑은 동심을 향해 욕심내지 않으며 함부로 화내지 않으며 아이들을 위해 혼자 가슴으로 울 수 있는 부모상이 절실하다. 해맑은 동심에 얼룩을 만들지는 않으며 칭찬해주고 안아주고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며 아이들 손을 잡고 바람이 가는 길에 손을 흔들어 주는 부모가 되어보면 어떨까. 홀로 깊은 샘처럼 생각하고 외 홀로 눈 감고 아이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가 되는 5월이 되었으면, 해맑은 동심에 구김살을 만들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진실된 사랑의 결이 만들어 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