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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물레방아는 도는 데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4-09 11:31:57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물레방아는 도는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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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 되면 떠오르는 일이 있다. 삼십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후회되는 사건이다. 

 

나는 5월의 신부였다.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이 그해의 사월 초파일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니, 함께 절에 가지 않겠냐고 어머니가 물으셨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머니, 제가 결혼 전에 이미 예수쟁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순간 어머니 얼굴에는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 알았노라 하시고는 혼자 절에 가셨다. 

 

까마득히 잊고 살았던 그 일이 다시 떠올랐던 때는 아들의 여자 친구를 소개받고 난 후였다. 그 애의 종교가 우리와 달랐다. 걱정이 앞섰다. 혹시라도 아들에게 종교를 바꾸라고 하면 어쩌나. 그렇다고 아들에게 미리 다짐을 받을 수도 없는 일, 그때야 비로소 시어머니의 심정이 헤아려졌다. 돌고 도는 게 인생이라더니, 참! 역지사지다. 

 

시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불공을 드리고 얻은 아들이 장성하자 예수 믿는 여자와 연애를 시작했다. 5년 넘게 교제하는 동안 교회에 간다, 성경공부를 한다. 야단법석을 떨었지만 어머니는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뵈러 갈 때마다 내 까다로운 식성에 맞는 반찬에 따신 밥을 손수 차려주셨다. 

 

다행하게도 아들의 여자 친구는 우리 교회에 출석했다. 그 아이를 교회에서 만나는 일이 어쩌면 그리 좋던지, 주일마다 마음이 설렐 정도였다. 장차 며느릿감이라고 친구들에게 인사 시킬 땐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던 지. 그럴 때마다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랬겠구나. 어머니도 새로 들인 며느리를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였구나. 그 마음을 몰랐던 며느리에게 퇴박 당하고 혼자 절에 가실 때 어머니 심정이 어땠을까. 

 

옛날 일을 생각하다보면 어머니의 인품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사실, 시어머니가 끝까지 강력하게 요구하셨더라면, 시집온 지 보름 된 며느리가 어찌 거역할 수 있었겠는가. “어쩌지? 아니야. 평생 절에 안 가려면 초장부터 세게 나가야 돼.” 앙큼하게 잔머리 굴린 예수쟁이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감히 선제공격을 날렸다. 그때 내 나이 방년 스물 넷, 크리스천이 절에 가면 지옥가는 대역죄가 되는 줄 알았을 때였다. 

 

사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종교적로는 합일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넉넉한 이해심 덕분에 가족 간에 상처를 주고받은 적은 없다. 내가 믿는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 반드시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한테만 베풀고 살라는 건 아닐 진데. 그 옛날 한 번의 치기어린 행동의 결과는 결국 부메랑처럼 내게 돌아왔다. 사는 동안 나는 어머니에게 함께 교회에 가자는 말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다. 

 

온 세상의 어머니들은 거의 비슷한 줄로 알았다. 양로원을 경영하면서 다른 어머니들과 견주어 보고서야 비로소 어머니의 며느리 사랑이 남달랐다는 걸 알았다. 귀한 외아들을 꼬드겨 미국으로 가버린 며느리가 미울 법도 하건만, 기력이 다할 때까지 다른 가족의 얼굴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아들의 얼굴과 며느리 이름은 끝까지 기억하셨던 어머니다. 

 

이제 나도 시어머니가 되었다. 돌아가는 물레방아 같은 게 인생이란 걸 몰랐던 지난 시절의 내 무례함을 생각하면 기가 차서 혼자 웃기도 한다. 며느리 사랑을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신 어머니 덕분에 나는 그 흉내를 조금만 내어도 일등 시어머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다시 사월 초파일이 왔다. 이제는 절이든 어디든 모시고 갈 자신이 있는데, 어머니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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