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수필]동백 아가씨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1 07:57:0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동백 아가씨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꽃샘추위에 자라목을 하고 다니느라, 뒷마당 동백꽃이 핀 것도 몰랐다. 붉은 꽃송이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다가갔지만, 푸른 잎 가지사이로 보이는 꽃들은 겨우 예닐곱 송이뿐, 꽃받침을 단 채로, 색도 모양도 싱싱한 채로 떨어져 있는 꽃송이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아쉬운 마음에 그저 한숨만 쉴 수밖에. 그래, 동백꽃이 어디 바람이 분다고 떨어지는 꽃이던가. 마치 늙은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으려 결심한 여인처럼, 그야말로 절정의 자태에 이르렀을 때 낙숫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꽃, 은장도를 꺼내 정절을 지켜내려는 청상의 여인처럼, 비장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결심한 듯 스스로 떨어지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꽃잎 한 장 흐트러지지 않고 떨어져있는 동백꽃을 보노라면 마음이 처연해진다.

 

무수한 시인들이 절절한 아픔으로 동백꽃을 노래했던 것도 그런 연유일까. 어느 시인은 동백꽃을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어디 시뿐이랴. 대중가요로는 가수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 만큼 우리의 가슴을 저미는 있는 노래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배웠던 대중가요도 ‘동백 아가씨‘이었다. 내게 이 노래를 가르쳐 준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동백꽃을 보면 언제나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성가대 솔리스트였던 엄마는 찬송가나 가곡이 아니면 절대 부르지 않았다. 유행가는 듣는 것도 금지했던 집안 분위기에서 소위 뽕짝 노래라는 ‘동백아가씨‘를 내게 가르쳐 준 데는 까닭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학교 소풍을 따라 다녔다. 어느 해 봄 소풍가는 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온 급우들이 ‘동백 아가씨’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 노래를 알지 못했던 나는 눈을 끔뻑이며 있을 수밖에. 그런 내 모습에 엄마가 열 받았던 걸까. 그 날 저녁 가사가 적힌 종이를 앞에 놓고 내가 외워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쳤다. 그 덕분에 ‘동백 아가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 한자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애창곡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엄마가 유일하게 불렀던 유행가도 ‘동백아가씨’ 뿐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날엔 어둠 짙은 앞마당을 바라보며 엄마는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따라 불렀다. 사업 일로 늘 외지로 돌던 남편을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쏙 빼닮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방금 피어난 모습 그대로인 채 땅에 떨어져 있는 꽃송이들이 아까워서 주워 모았다. 오늘 저녁엔 수반에 동백꽃 띄워 놓고 ‘동백 아가씨’나 구성지게 불러 볼까나. 어느새 내 나이,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훌쩍 뛰어 넘었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벌레박사 칼럼] 심각한 바퀴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칼럼] 심각한 바퀴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식당 비즈니스하시는 교민분들 중 바퀴벌레 문제로 문의를 하시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식당 페스트 컨트롤 서비스의 90% 이상은 바퀴벌레 서비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법률칼럼] 아틀란타의 반격 2025년 미국 경제법 시리즈-1화: 관세의 칼바람

케빈 김 법무사 2025년 4월, 조지아주 아틀란타 미드타운. 리사(Lisa)는 피치트리 스트리트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사무실에서 고지서를 내려다본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내 마음의 시] 커피 한 잔의 행복
[내 마음의 시] 커피 한 잔의 행복

박덕희 사모 지나간 삶의 그리움과 다가올 삶의기대 속에 우리는 늘 아쉬움이 있다커피 한 잔에 행복을 느끼는 소박한 믿음으로살아가고, 작은 일 속에서도 보람을 느끼면삶 자체가 좋을

[행복한 아침] 모든 가정들 위에

김정자(시인·수필가) 태초에 창조주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 동방 에덴 동산에 부부를 두어 가정을 이루게 하시었다. 가정은 모든 관계의 바탕

[내 마음의 시] 어머니
[내 마음의 시] 어머니

김용희 눈이 부시게 푸르른 파란 빛깔로평생을 벗삼은 낡은 성경안고일평생 접어둔 두 날개 활짝 펴그렇게도 가벼이, 가벼이 가시더이다. 85년 가슴에 무거운 돌 얹고,알뜰살뜰 성실히,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그리움 저편에(Beyond the Longing)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그리움 저편에(Beyond the Longing)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숲의 풍경이 짙은 푸르름으로 다가온다. 탁 트인 물리적 공간의 조망이 매우 신선한 느낌이다. 순간 삶의 시련과

[내 마음의 시] 그리운 울 엄마 (이융달)
[내 마음의 시] 그리운 울 엄마 (이융달)

이 융 달 장로(생명수샘 기도센터·건축가) 아직 내 안에 있어 좋다마음 속에 늘 있어 좋다꿈 속에 가끔 나타나 좋다천국 가시기 전날 밤누워 들려 주셨던 말씀6.25 사변 뼈아픈 사

[신앙칼럼]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 이사야Isaiah 49:5)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21세기의 그리스도인에게 발견되어지는 가장 큰 모순적 현상은 ‘이해와 순종(Understanding And Obedience)’이라는 궤

[시와 수필] 사랑으로 끓여서 기쁨 솔솔 뿌려요

박경자 (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한 잔의 친절에 사랑을 부어 잘 섞고하느님에 대한 믿음과많은 인내를 첨가하고기쁨, 감사, 사랑을넉넉하게 뿌립니다.그러면 1년 내내 포식할천사의

[뉴스칼럼] ‘건강한 망상’

지난 1979년 엘렌 랭어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는 70~8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유명한 ‘시계 거꾸로 돌리기(counterclockwise)’ 실험을 했다. 20년 전인 1959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