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수필]동백 아가씨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1 07:57:03

수필,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동백 아가씨

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꽃샘추위에 자라목을 하고 다니느라, 뒷마당 동백꽃이 핀 것도 몰랐다. 붉은 꽃송이를 보자마자 한걸음에 다가갔지만, 푸른 잎 가지사이로 보이는 꽃들은 겨우 예닐곱 송이뿐, 꽃받침을 단 채로, 색도 모양도 싱싱한 채로 떨어져 있는 꽃송이들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아쉬운 마음에 그저 한숨만 쉴 수밖에. 그래, 동백꽃이 어디 바람이 분다고 떨어지는 꽃이던가. 마치 늙은 모습을 절대 보이지 않으려 결심한 여인처럼, 그야말로 절정의 자태에 이르렀을 때 낙숫물처럼 뚝뚝 떨어지는 꽃, 은장도를 꺼내 정절을 지켜내려는 청상의 여인처럼, 비장하게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결심한 듯 스스로 떨어지는 꽃이다. 그래서인지 꽃잎 한 장 흐트러지지 않고 떨어져있는 동백꽃을 보노라면 마음이 처연해진다.

 

무수한 시인들이 절절한 아픔으로 동백꽃을 노래했던 것도 그런 연유일까. 어느 시인은 동백꽃을 '지상에서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 뜨거운 술에 붉은 독약 타서 마시고/ 천 길 절벽 위로 뛰어내리는 사랑/ 가장 눈부신 꽃은/ 가장 눈부신 소멸의 다른 이름이라'고 했다. 어디 시뿐이랴. 대중가요로는 가수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 만큼 우리의 가슴을 저미는 있는 노래도 없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배웠던 대중가요도 ‘동백 아가씨‘이었다. 내게 이 노래를 가르쳐 준 사람은 엄마였다. 그래서인지 동백꽃을 보면 언제나 엄마가 먼저 떠오른다. 성가대 솔리스트였던 엄마는 찬송가나 가곡이 아니면 절대 부르지 않았다. 유행가는 듣는 것도 금지했던 집안 분위기에서 소위 뽕짝 노래라는 ‘동백아가씨‘를 내게 가르쳐 준 데는 까닭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엄마는 학교 소풍을 따라 다녔다. 어느 해 봄 소풍가는 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온 급우들이 ‘동백 아가씨’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 노래를 알지 못했던 나는 눈을 끔뻑이며 있을 수밖에. 그런 내 모습에 엄마가 열 받았던 걸까. 그 날 저녁 가사가 적힌 종이를 앞에 놓고 내가 외워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쳤다. 그 덕분에 ‘동백 아가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사 한자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나의 유일한 애창곡이 되었다.

 

돌이켜 보면, 엄마가 유일하게 불렀던 유행가도 ‘동백아가씨’ 뿐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날엔 어둠 짙은 앞마당을 바라보며 엄마는 ‘동백아가씨’를 불렀다. 그럴 때면 나는 엄마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따라 불렀다. 사업 일로 늘 외지로 돌던 남편을 머리카락부터 발톱까지 쏙 빼닮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었을까.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방금 피어난 모습 그대로인 채 땅에 떨어져 있는 꽃송이들이 아까워서 주워 모았다. 오늘 저녁엔 수반에 동백꽃 띄워 놓고 ‘동백 아가씨’나 구성지게 불러 볼까나. 어느새 내 나이, 그때의 엄마 나이를 훌쩍 뛰어 넘었다.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차고문을 들이받았다면 자동차보험일까, 주택보험일까

집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 가운데 의외로 자주 발생하는 것이 있다. 바로 차고(Garage)에서 일어나는 사고이다. 후진하다가 차고문을 들이받거나, 기어를 잘못 넣어 집 벽을 들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마음을 열게하는  지름 길

이용희 목사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끊임없이 설득을 시도하곤 합니다.  이런 경향은 세일즈맨들에게 흔히 나타납니다. 그러나 정말로 완전하게 자신의 뜻

[행복한 아침] 마음이 담긴 말

김 정자(시인 수필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깊이 다친 적이 있다. 한참을 따끔하게 보답해 줄 한 마디를 찾아 헤매느라 무수한 말들이 내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사람마다

[신앙칼럼] 유혹의 안전지대: 하나님의 전신갑주(Beyond Temptation: Standing Firm in the Armor of God, 에베소서 Ephesians 6:11~18)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1. 도입: 인간이 만든 '가짜 안전지대'의 허상 (Illusion of Safety)15세기 영성가 토마스 아 켐피스는 *"유혹을 받을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재정칼럼]  천경태의 은퇴를 지키는 쇼셜시큐리티 인사이트 -  은퇴와 생활의 기초를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제도 읽기 (22)

알아두면 든든한 사회보장국 공식 유튜브 필수 영상 5선과 디지털 소통 가이드온라인 계정·은퇴연금·장애심사·SSI·사기예방까지… 영상으로 만나는 핵심 복지 길잡이 천경태 (금융전문가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특별기고] 9월 4일, 우리는 그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미셸 강 (조지아주 하원의원 후보, District 99) 현대·LG ICE 단속 1년, 우리가 묻는 질문은 “어떤 미국을 원하는가”이다 2025년 9월 4일. 조지아 한인사회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뒷 산

뒷산 / 신달자 외로울 적에마음 답답할 적에뒷산에 올라가 마음을 벗는다나무마다 하나씩 마음을 걸어두고노을을 받으며 드러눕는 그림자돌아가는 것이 없는 빈 몸이다뒤산은 뒷산은 내 몸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집 앞 나무를 자르다 생긴 사고, 주택보험이 책임질까?

최선호 보험전문인 나무는 집의 분위기를 바꾸는 가장 훌륭한 조경 가운데 하나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에는 삭막한 풍경에 자연의 멋을 더해 준다. 잘 가꿔진 큰

[애틀랜타 칼럼] 상대방의 위치에서 보라

이용희 목사 우리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처음부터 서로의 견해가 다른 주제를 꺼내서는 안 됩니다. 서로가 일치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문제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합니다.  그

[독자기고] 건너온 음악, 삶을 보듬다

김건흡(수필가·칼럼니스트) 황혼의 길목에서 가만히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인생의 중요한 모퉁이마다 이름 없는 선율들이 나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악보 위에 새겨진 까만 음표들이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