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이규 레스토랑
김성희 부동산
첫광고

[오피니언] 몸보다 글이 ‘섹시’했던 KW Lee 대기자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21 12:03:03

오피니언,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KW Lee,이경원 대기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신문기자들의 금과옥조가 하나 있다. 새내기 때 귀에 못이 박히게 훈계를 들었다. 누구나 아는 ‘5W-1H’ 따위가 아니다. “기사를 간결하게 쓰라”는 것이다.

내 딴엔 멋지게 써낸 기사가 데스크(부장)를 거쳐 신문에 게재돼 나온 걸 보면 반 토막으로 줄어들었기 일쑤였다. 군더더기를 빼고 편견이 개입될 수 있는 형용사와 부사를 가능한 한 줄이라는 주문이었다.

그 후 20년이 훨씬 지난 중견기자 시절에 이번엔 ‘하늘같은’ 선배가 “기사를 섹시하게 쓰라”고 다그쳤다. 나는 얼른 말귀를 알아차렸지만 새내기들은 어리둥절했다. 음담패설을 쓰라는 거냐고 묻는 후배도 있었다. 펑퍼짐하지 않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온 여자의 몸매가 섹시해 보이듯이 글도 간결하고 균형이 잡혀야 맛깔스럽다는 설명이었다.

그 대선배 기자가 바로 이경원(KW Lee)씨였다.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에서 은퇴한 그분을 한국일보 미주본사가 1990년 고문으로 영입했고, 당시 한국일보 미주판의 한 페이지짜리 ‘부록’이었던 영문판을 얼마 후 주간지로 확장해 그를 편집장으로 위촉했다. 영문판 창간을 돕기 위해 서울본사에서 파견 나와 있던 내가 선배님을 만난 건 기대 못했던 큰 행운이었다.

그가 1970년대에 쓴 120여 꼭지의 ‘이철수 사건’ 기사는 지금 읽어봐도 섹시하다. 이철수가 중국인 갱 두목을 살해했다는 건 누명이고 그가 교도소에서 동료 수감자를 죽인 건 정당방위임을 입증한 논지가 명쾌하다. 그는 재판에 관여한 판사·검사·경찰관·배심원·관선변호사 등을 일일이 인터뷰한 후 이들이 한결같이 이철수를 중국인으로 알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는 “내 혈관엔 잉크가 흐른다”고 농담했다. 자신의 기자 근성을 빗댄 말이지만 본래 기자가 꿈은 아니었다.

그는 고려대 재학 중이던 22세 때(1950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웨스트버지니아 대학을 거쳐 명문 일리노이 대학에서 1955년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에 신문학과를 창설하고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귀국을 앞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던 몬테레이 헤럴드지로부터 한국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에 관한 글을 청탁받은 게 화근이었다.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81세 고령에 종신집권을 노리며 3선 출마를 강행한다”고 호되게 깠다. 그의 기고는 곧바로 경무대에 입수됐고 뿔이 난 프란체스카 여사는 상항(SF)총영사관에 압력을 넣어 그의 유학생 여권을 당장 취소시켜버렸다.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된 그는 강제추방을 피하려고 전국 신문사 수십 곳에 구직원서를 뿌렸다. 이윽고 테네시주 동부 시골의 킹스포트 타임스-뉴스지에 가까스로 취직했고 얼마 후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찰스턴 가제트지에 인권 전문기자로 스카웃 됐다. 그는 당시 대형병원 응급실의 부조리를 캐내려고 끈질기게 찾아가 인터뷰했던 간호사 페기 플라워와 결혼했다.

그는 조사보도라는 장르가 생기기 전부터 그 길을 닦았다. ‘자유영혼상’과 아시안 언론인협회(AAJA)의 첫 평생업적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한미기자협회(KAJA) 창립회장이다. 한인이민 100년사의 ‘10대 위인’에 선정됐다. LA 폭동을 한인 시각에서 ‘Saigu(4·29) Riot’으로 고집스레 표기했다. 2세 지도자 양성을 위해 2003년 ‘KW Lee 리더십 센터’도 창설했다.

‘한인 언론의 대부’로 추앙받는 그 선배님이 8일 96세로 영면했다. 영문판에 인턴을 시켰던 내 아들과, 본인이 개설하려던 고대 신방과를 나온 내 아내의 안부를 기회 때마다 물었다. 바쁠 땐 구내식당에서 감자를 구워 점심을 때웠다. 

이식받은 간이 흑인 것 같다며 “나는 인종통합을 몸으로 실천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섹시한 글을 후배들이 더 이상 접할 수 없게 됐다. 그보다도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핍박 정책이 날로 강화되고 있는 때에 한인들의 목소리를 앞장서 외쳐온 선구자가 스러졌다. 전체 한인사회의 큰 손실이다.

<윤여춘 전 시애틀지사 고문>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신앙칼럼] 전쟁의 역사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평강의 왕, 예수(God Intervenes In The History Of War: Jesus, The Prince Of Peace, 이사야Isaiah  9:6)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디아스포라 삶의 소망

최 모세( 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이민자(디아스포라)의 소망은 안정된 삶을 이루는 것이다.삶의 토대가 흔들리는 극한 상황에서 미래 지향적인 소망의 실현이 가능할까?이민자의 삶이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삶과 생각] 친구의 9순 잔치

지천(支泉) 권명오 (수필가 / 칼럼니스트) 뉴욕에 살고 있는 친구 오혜영 씨의 구순 잔치가 많은 지인들의 축하와 함께 아름답게 펼쳐졌다.축하와 함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본다. 나는

[추억의 아름다운 시] 님의 노래

김소월 그리운 우리 님의 맑은 노래는 언제나 제 가슴에 젖어 있어요 ​긴 날을 문밖에서 서서 들어도 그리운 우리 님의 고운 노래는 해 지고 저물도록 귀에 들려요 밤들고 잠들도록 귀

[수필] 슬픔의 에너지
[수필] 슬픔의 에너지

김혜경(사랑의 어머니회 회장·아도니스 양로원 원장) 여든 네 살 할머니가 스스로 양로원을 찾았다. 남은 생을 먼저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덧없이 흘려보내지는 않겠다는 할머니만의 결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 주택보험 구조 이해

최선호 보험전문인  어떤 책이든 맨 앞의 목차를 훑어보면 전체 윤곽이 보인다. 세부 내용을 모두 읽지 않아도, 어떤 순서로 무엇이 담겨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주택보험도 마찬

[애틀랜타 칼럼] 바르게 보는 법을 배우자

눈은 마음의 창이기에 사물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마음의 훈련이 필요하다. 정신적 근시와 원시를 경계하고 창조적인 시각을 가져야 하며, 미키모토 고기치의 인공 진주 양식 성공 사례처럼 지식을 행동과 결합해 기회를 포착하는 적극성이 성공의 필수 요건임을 역설한다.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내 마음의 시] 연분홍 설레임

광우 허 영희(애틀란타 문학회 회원) 다시 피는 봄,겨울 내내 소중히 품어온 고운 마음살며시 봄바람이 부추기면그 속에 피어난 연분홍 설레임 고이 접어둔 남빛 저고리 꺼내어연분홍 치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박영권의 CPA코너] 한국 은행 계좌도 신고 대상… 놓치면 안 된다

이민 생활을 하는 한인 동포들은 한국이나 해외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단순히 계좌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해외 금융계좌와 금융자산

[법률칼럼] 밀입국 배우자 영주권, 2026년 변수까지 고려해야 한다

2026년 현재 밀입국 배우자의 영주권 취득은 법적 조항보다 심사 강도 강화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엄격한 검증 기조에 맞춰 I-601A 사전면제 신청 시 극심한 곤란(Extreme Hardship)을 입증할 객관적 증거 확보가 중요하다. 무분별한 절차 진행보다는 FOIA 기록 확인 등 사전 점검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