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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영광의 그림자를 품고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5-03-19 17:15:10

에세이,이현숙,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영광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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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는 한때 금을 찾아 몰려든 사람들로 들끓던 금광촌의 땅이었다. 골드러시의 흔적은 여전히 곳곳에 남아 있으며, 그 중심지 중 하나였던 플레서빌(Placerville)에 도착했다.

레이크 타호로 가는 길목, 미국 50번 도로 초입의 작은 마을이다. 목수 제임스 마샬이 금을 발견한 후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곡괭이만으로 부족해지자, 강한 수압으로 산을 허물어 금을 채취했다. 그래서인지 마을 중심에는 3층 높이의 벨 타워(Bell Tower)가 세워져 있다. 이는 당시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상징적인 건축물로, 오늘날까지 마을의 중요한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한때 ‘행타운(Hangtown)’이라 불리며, 교수형이 자행되던 곳이었다. 금을 둘러싼 다툼과 범죄가 끊이지 않아서 죄인들은 참나무에 매달렸다. 지금도 ‘행맨스 트리(Hangman’s Tree)’ 간판 아래 2층 난간에는 ‘강도’라는 팻말을 단 인형이 매달려 있다. 철도공사와 금광에서 일하던 많은 중국인들도 억울하게 처형당했다. 

영화 <집행자>(Hang ‘Em High)의 교수형 장면이 떠오른다. 광장에 몰려든 군중, 지붕 위까지 빽빽이 올라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려는 아우성. 간식을 파는 잡상인들까지 몰려든다. 죄인의 몸이 축 늘어지는 순간, 탄식인지 환호인지 모를 소리가 울려퍼진다.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시절이라지만, 죽음을 구경거리로 삼았다는 사실이 섬뜩하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는 하다.

북쪽으로 올라가니 1859년 지어진 ‘피어슨스 청량음료’ 건물이 보인다. 지금은 식당이지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얼음이 귀하던 시절, 이곳은 음료와 얼음을 함께 보관하던 창고였다. 먼지 쌓인 옛 음료수 병이 35달러에 팔리고 있다. 누가 사 가는 걸까?

플레서빌은 리바이스 청바지의 고장이기도 하다. 1853년, 리바이 스트라우스는 광부들의 바지가 쉽게 해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질긴 천막용 천으로 청바지를 만들었다. 상점 안에는 색이 바래고 구멍 난 청바지들이 ‘빈티지’라는 명목으로 비싼 가격표를 달고 있다.

플레서빌 철물점은 북캘리포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으로, 마치 금광촌 박물관 같다. 광부들이 사용했던 곡괭이와 금 접시뿐만 아니라 나무 흔들의자까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구경하는 재미는 있지만, 선뜻 사고 싶지는 않다. 한때 번영했지만, 이제는 옛 명성만 남은 마을. 천년 가는 영화가 없듯, 영원한 영광도 없다.

맥주집 ‘퍼브(pub)’에 들어갔다. 금광촌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소설의 소재로 삼은 작가도 있다. <톰 소여의 모험>의 마크 트웨인이다. 남북전쟁으로 뱃길이 막히자 서부로 향한 그는 금광에서 실패하고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며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엔젤스 캠프 호텔 술집에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캘러버라스 카운티의 명물, 뜀뛰는 개구리>를 썼다. 

흥겨운 음악 속, 백발이 성성한 손님들이 복도로 나와 춤을 춘다. 왜 이 한적한 마을을 떠나지 않을까. 조상들의 땀을 기억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밖으로 나오니 황금빛 노을이 벨 타워 꼭대기의 종을 감싼다. 한때 이곳을 뜨겁게 달궜던 추억들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모든 것은 떠오르면, 결국 지기 마련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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