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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의 시선] 김주혜의 “작은 땅의 야수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12-11 13:52:22

정숙희의 시선, LA미주본사 논설위원, 김주혜,작은 땅의 야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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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10일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진 날, 또 다른 한국인작가 김주혜가 톨스토이 해외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뉴스가 타전됐다. 톨스토이문학상은 러시아 최고권위의 문학상이고 한국인으론 첫 수상이었지만 한강의 뉴스가 워낙 컸던 탓에 이 소식은 슬그머니 묻히고 말았다. 

소설 “작은 땅의 야수들”(Beasts of a Little Land)로 이처럼 큰 상을 받은 김주혜(Juhea Kim, 37)는 미주한인 1.5세 작가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 오리건주 포틀랜드로 이주하여 프린스턴대학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고, 2016년부터 단편들을 발표하다가 2021년 첫 소설로 거포를 터뜨렸다. 빵도 사먹기 힘들 정도의 어려운 여건에서 집필했다는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이달의 책’에 올랐고 미국 40여개 신문잡지방송에서 추천도서로 소개되면서 현재까지 14개국에서 출판되어 TV시리즈 제작도 추진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가 배경인 수려하고 장대하며 매혹적인 책이다. 해외에서 성장한 젊은 작가가 100년전 경성 한복판에서 실타래 같은 인연의 편린을 따라 만나고 헤어지고 사랑하고 죽어가는 한국인들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영어로 썼다는 점이 경이롭다. 

김주혜는 2019년 최인호의 단편 ‘이 지상에서 가장 큰 집’(The Biggest House on Earth)을 영역했을 만큼 우리말에 능숙한 작가다. 그러니 한국어판은 자신이 직접 썼을 만도 한데, 오히려 전문번역가의 손을 통해 새로운 한국어소설로 태어났다는 사실도 이례적이다. 

흥미롭게도 번역가 박소현 역시 이민자 출신이다. 서울에서 태어나 8세 때 과테말라로 이민한 그는 2년 뒤 귀국하여 한국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17세 때 LA를 거쳐 다시 과테말라로 이주했다. 그리고 21세 때 한국으로 돌아가 성균관대학과 서울대학 대학원에서 프랑스문학과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언어를 체화해온 재원이다. 

박소현은 옮긴이의 말에서 “떠도는 사람들은 글자 속을 고향삼아 만난다”고 했다. 말하자면 한국인작가가 영어로 쓴 글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하면서 그 갈피에 이중으로 스며있는 의미를 캐내어 한층 아름다운 우리말로 되살리는 작업 같은 것이다. 작가가 영어로 지은 이름들을 번역자가 옥희(Jade), 월향(Luna), 연화(Lotus), 돌쇠(Stoney)라는 토속적인 이름으로 되살려냈다는 사실도 인상적이다. 어쩌면 두 사람 모두 이민자들이기에 그리움을 담아 한국의 정신이 깃든 낱말들을 빚어냈을지도 모른다. 

“작은 땅의 야수들”은 1918년부터 1964년까지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큰 스케일의 이야기다. 중심인물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 기생집에 팔려간 옥희. 그녀를 사랑하는 깡패 정호와 고학생 한철, 옥희의 동료 기생들인 연화와 월향, 독립군을 이끄는 명보, 기방을 운영하며 독립운동자금을 대는 단이, 일본군 소령 야마다와 이토 등 모두 역사의 소용돌이와 운명의 수레바퀴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아냈던 사람들이다. 

기생들이 주요인물인 점도 특별하다. 김 작가는 기생을 재주 많고 낭만적이며 독립적인 여성으로 보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과거 여성은 어머니, 아내일 뿐 직업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으나 그중 희귀하게 독립성을 갖고 연애와 문학 활동에 자유로웠으며 리더나 탤런트 역할도 했던 사람들이 기생”이라고 말했다. 

600페이지나 되는 장편대하소설이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빠져들고, 세월과 함께 인생의 반전들이 거듭되면서 마지막까지 호기심과 경이감을 유발한다. 단순하지만 힘 있는 문체가 강렬하고, 통찰력 있는 서사와 유려한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이야기는 1917년 겨울 평안도 깊은 산속에서 한 조선인 사냥꾼이 일본인 장교를 호랑이의 공격에서 구해주며 시작된다. 작가는 일본장교 이토의 말을 빌어 “일본에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는데 우리보다 훨씬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롭다”면서 작고 척박한 땅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고 용맹하게 꿋꿋이 살아오던 우리 선조들을 야수들에 비유한다. 호랑이는 한국인의 영적인 힘이요 독립운동의 상징이었으나 일제의 사냥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 유산인 호랑이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한편 자연파괴, 전쟁, 기아가 계속되는 지금 인류의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그는 책의 상금과 인세를 러시아의 호랑이보호단체에 기부하며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이다.    

김주혜의 외할아버지는 김구 선생을 옆에서 도왔던 독립 운동가였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어머니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듣고 자라면서 한국의 역사를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럽게 인식했으며 결국 이 책의 동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영어로 쓴 소설이지만 책을 쓰면서 가장 인정받고 싶었던 분들이 재미교포들과 한국 독자들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많이 읽고 큰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면 좋겠다.

김주혜는 최근 두 번째 소설 ‘밤새들의 도시’(City of Night Birds)를 미국에서 출간했다. 러시아와 프랑스를 배경으로 발레리나 이야기를 담은 이 책도 벌써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다.            

<정숙희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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