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이스라엘 공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레바논 헤즈볼라 본부가 초토화됐다. 7층짜리 주거건물 4개 동을 폐허로 만든 이스라엘 전투기의 대규모 공습에는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BLU-109’로 불리는 관통 폭탄, ‘벙커버스터’가 사용됐다.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사전에 헤즈볼라 지도부 회의 계획을 포착했고, 지하 18m 본부에서 회의를 주재하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가 희생양이 됐다.
벙커버스터는 군사위성을 이용한 유도시스템으로 표적에 접근하고, ‘드릴링’을 통해 지하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하도록 설계돼 있다. 지하기지나 지휘소가 과거와 달리 온전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이란의 지하 핵시설 파괴를 명분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으로부터 BLU-109 수백 기를 수입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도 사용했다. BLU-109는 탄두 중량 1톤에 지하 15m 이상 뚫고 들어갈 수 있다. 1980년대 중반 실전 배치됐고, 한국을 비롯한 미국 우방국에 수출됐다고 한다.
벙커버스터 진화는 계속돼 2010년대 실전 배치된 미군의 GBU-57 MOP은 지하 60m 이하로 뚫고 들어가 ‘끝판왕’으로 불렸다. 전폭기에서 투하해 표적까지 유도하는 방식이다. 중량만 14톤에 달해 가오리 형태의 B-2 스피릿이 GBU-57 MOP을 운반, 전개할 수 있는 유일한 전폭기라고 한다. 이스라엘도 이 무기를 원했지만 운반 수단이 없어 포기했다는 후문이다.
국군의날 대형 이동식 발사 차량(TEL)에 실려 외형을 처음으로 드러낸 ‘괴물 미사일’ 현무-5는 지하 100m 아래까지 뚫고 들어갈 수 있다. 탄두중량만 8톤, 총중량 36톤의 지대지 미사일이다. 우리 군의 3축체계 가운데 공격당한 뒤 반격하는 대량응징보복의 핵심수단이다. 북한은 6·25전쟁 이후 미사일 등 주요 군사기지나 지휘소를 산악 동굴이나 지하시설에 두고 있어 벙커버스터 수요는 넘치는 셈이다. 북한도 7월 ‘화성-11다-4.5’로 명명된 탄두 중량 4.5톤의 재래식 탄도탄을 시험발사해 남북의 재래식 군비 경쟁 또한 가속화하고 있다.
<정진환 본국 한국일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