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자 증가·인력 부족, 평균 10~13주 걸려
한인 김모(38)씨는 지난해 미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동안 특별히 여권의 필요성을 못 느껴 미국 여권 신청을 미루고 있다가 올해 들어 한국 방문 계획이 생겨 웨스트 LA의 연방 청사에 가 여권 신청을 했다. 그런데 세 달 가까이 지나도록 아직 여권을 받지 못했고 한국의 지인들과 계획한 휴가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시민권자 한인 최모(41)씨도 3개월 가까이 여권을 기다리고 있다. 수주내로 여권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업 문제로 여행 계획을 내년으로 미뤄야 하는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이다.
해외여행 수요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으로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이처럼 한인 시민권자들을 포함한 미국인들이 여권을 발급받는 데 수개월이 걸려 정부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3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국무부는 올해 접수한 여권 발급 신청이 역대 최대인 한주 50만 건에 달하면서 작년 한 해 발급한 2,200만건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여권 업무를 처리할 직원 부족 등의 이유로 발급 절차가 지연되면서 여행 계획을 세운 미국인들이 출국일 며칠 전까지 발을 동동 구르거나 최악의 경우 여행을 취소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고 AP는 전했다.
텍사스주 달라스에 거주하는 진저 콜리어는 6월 말 유럽 여행을 위해 3월 초에 가족 4명의 여권을 신청했고 당시 8∼11주 걸릴 것이라는 답변을 받았지만, 이후 절차가 지연되면서 출국일을 겨우 4일 남기고서야 여권을 받았다.
속이 타는 신청자들은 여권 발급에 필요한 인터뷰를 예약하기 위해 매일 하염없이 고객센터 전화기를 붙잡고 있거나 여권을 우편으로 받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표까지 끊어가며 여권 발급센터로 직접 가 여권을 찾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거주지 지역구 관할 연방의원 사무실에는 불만과 민원이 쏟아지고 있다. 유타주 홀러데이에 사는 마니 라르센은 유럽 여행을 위해 두 달 전에 신청한 아들의 여권 발급이 늦어지자 밋 롬니 상원의원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롬니 의원실은 여권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 있는 사실을 파악해 LA로 배송되도록 했고 라르센과 아들은 비행기로 LA로 이동해 여권을 받은 뒤 다른 가족이 이미 가 있는 로마로 바로 출국했다. 라르센은 운이 좋은 경우다.
미란다 릭터는 6월6일로 계획한 크로아티아 여행을 위해 2월9일에 여권을 신청한 경우. 남편과 딸의 여권은 11주 만에 받았지만, 자신의 여권은 사진이 문제가 돼 다시 신청해야 했다.
부부는 지역구 연방 상·하원 의원실과 여권 대행업체에 전화하고 정부 여권 발급센터를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지만 여권은 발급되지 않았고 결국 1,000달러를 넘게 날리고 여행을 취소했다.
연방 정부는 여권 발급이 늦어지는 이유로 코로나19를 지목했다.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은 지난 3월23일 연방하원 청문회에서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시기에 여행 수요가 사라지자 여권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들을 다른 업무로 돌리고 외부업체와 계약도 해지했다고 설명했다. 또 온라인으로 여권을 갱신하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동안 시스템 운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국무부는 여권 담당 직원을 더 고용하고 여권 인터뷰 기회를 늘리려고 하고 있다.
외국을 방문하는 미국인들이 증가한 것도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린 이유다. 여행 수요가 늘면서 1989년 미국인 100명 중 3명에 불과했던 여권 소지자는 2022년 100명당 46명으로 급증했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