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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엔 킹스맨, 한국엔 킬복순…전도연표 액션 누아르 '길복순'

한국뉴스 | 연예·스포츠 | 2023-02-22 09: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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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변성현 감독 연출…스타일리시한 미장센 돋보여

영국엔 킹스맨, 한국엔 킬복순…전도연표 액션 누아르 '길복순'
영화 ‘길복순’/넷플릭스 제공

길복순(전도연 분)은 살인청부업자이자 사춘기 딸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이다. 그는 좀처럼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영화 '길복순'은 킬러와 엄마라는 주인공의 두 정체성이 주는 아이러니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그 과정에서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을 끊임없이 넘나든다.

길복순은 '작업' 중엔 얼굴에 피가 튀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냉혹한 킬러다. 그러나 사춘기 자식 앞에서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야 마는 쿨하지 못한 어른이 된다.

사립학교 학부모 모임에서는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늦깎이' 극성 엄마이지만, 업계 사람들이 모인 술자리에서는 일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언성을 높일 줄 아는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두 영역을 온전히 지키기는 쉽지 않다. 엄마라는 정체성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딸 재영(김시아)은 자꾸만 자신에게 보이지 않는 벽을 쌓아 올린다.

킬러라는 직업을 걷어내고 나면 길복순은 일과 가정 사이에서 좀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는 여느 워킹맘과 같다. 자꾸만 커지는 엄마라는 이름은 그가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전설의 킬러'라는 평판은 추락 위기에 놓인다.

회사와의 재계약 기간이 다가올수록 복순의 고민은 깊어진다.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자 회사 대표인 차민규(설경구)와의 약속과 퇴학 위기에 놓인 딸 사이에서 복순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상황은 복순이 업계를 떠날 수 없도록 조금씩 옥죄여온다.

영화는 '존 윅' 시리즈를 연상케 한다. 킬러라는 직업과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 사이에서 고뇌하는 복순의 모습은 아내를 위해 은퇴했지만, 같은 이유로 업계에 다시 발을 들이는 전설적인 킬러 존 윅(키아누 리브스 분)과 겹친다.

그러나 길복순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특성은 영화 '킹스맨' 시리즈 속 해리 하트(콜린 퍼스)를 닮았다. 깔끔한 수트 차림, 군더더기 없는 액션, 일본 야쿠자 조직 두목에게 '공정한 싸움'을 제안하는 모습까지. 시청자는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살인청부업자임을 알면서도 길복순을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된다.

타이틀롤을 연기한 전도연의 액션 연기도 주목할만하다. 이번 작품은 전도연이 영화 '협녀: 칼의 기억'(2015)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정통 액션이자, 첫 현대 액션극이다. 전도연은 마트에서 산 3만원짜리 도끼부터 칼, 총, 마커 펜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한 액션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 작품의 다른 한 축을 차지하는 모녀 관계에서는 보통의 엄마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예술감독 카를로 샤트리안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이 작품이 영화제에서 베일을 벗은 뒤 "전도연은 '밀양'과는 또 다른 어머니를 완벽하게 연기했다"고 호평하기도 했다.

영국엔 킹스맨, 한국엔 킬복순…전도연표 액션 누아르 '길복순'
객석 가득 메운 관객들(베를린_-18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 있는 베르티 뮤직홀에서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스페셜 부문 상영작인 '길복순'을 관람하기 위해 기다리는 관객들

다만 영화의 중심에 놓인 복순과 딸의 갈등이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재영의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많은 분량을 할애했음에도 영화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머무는 데 그친다.

연출을 맡은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2016)과 '킹메이커'(2021)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을 선보인다.

길복순과 야쿠자 두목 오다 신이치로의 대결에서는 기차가 지나가는 사이사이로 보이는 두 사람의 모습을 담아내 만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복순이 속한 회사 엠케이(MK) 건물 내부와 민규의 사무실은 고급 호텔 같으면서도 비밀스러운 느낌을 줘 판타지성을 더한다.

감독은 또 길복순이 상대와의 대결에 앞서 예측한 경우의 수를 화면에 그대로 구현해냈는데, 이는 마지막 결투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하나의 폐쇄된 공간 안에 수많은 복순이 서로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구교환의 연기 변신도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넷플릭스 시리즈 'D.P.'와 영화 '모가디슈'로 얼굴을 알린 그는 이번 작품에서 복순의 후배 희성을 연기했다. 구교환은 복순에 대한 애정과 대표 민규에 대한 증오, 아버지를 살려야 하는 아들과 그러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킬러로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을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내달 31일 공개. 137분. 청소년 관람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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