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 경기비관론 확산
어도비애널리틱스는 미국의 황금 쇼핑 기간인 지난달 말 블랙프라이데이 당일의 온라인 쇼핑액이 91억2,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2.3% 늘었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할인이 정점을 이루는 ‘사이버 먼데이’ 판매액은 5.3% 증가한 113억 달러를 기록했다. 닷새의 세일 기간 총 판매액은 360억 달러를 넘기며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사상 최대’라는 수치에는 어두운 이면이 가려져 있다. 포레스터의 애널리스트 슈차리타 코달리는 “인플레이션이 8% 상승했는데 매출이 5% 늘었다면 이는 소비자들이 구매를 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경제의 보루인 소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의미다.
월가 투자은행의 수장들이 우려하는 대목도 바로 이 지점이다. 인플레이션으로 미국인들의 가처분소득은 줄어드는 반면 금리 인상으로 부채 부담은 늘고 있으니 시간이 갈수록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에는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게 이들이 바라보는 시나리오다.
JP모건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6일 “소비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시행된 부양 정책 덕에 1조 5000억 달러의 초과 저축을 보유하고 있고 2021년보다 현재 10%가량 더 소비하고 있다”며 “하지만 치솟는 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이 모든 것을 잠식하면서 내년 중반이면 소비자들의 보유 현금은 모두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 경제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미국인들의 초과 저축액은 1조7,000억 달러 수준이다. 2020년 1분기만 해도 1,000억 달러에 못 미쳤지만 팬데믹 기간 정부의 각종 보조금 덕에 2021년 3분기에는 2조2,866억 달러까지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상반기에만 약 5,000억 달러 이상 줄었다. JP모건 외에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골드만삭스 등 월가 투자은행들은 이르면 1년 내에 남은 1조7,000억 달러가 모두 소진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저축률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10월 미국 개인 저축률은 2.3%로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미 일부 가정에서는 가처분소득 부족으로 신용카드에 가계를 의존한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3분기 신용카드 잔액은 9,250억 달러로 전년(8,040억 달러) 대비 15% 증가했는데, 이는 20년 만에 최대 폭이다. 레비센터의 데이비드 레비 CEO는 “저축률이 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은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곧 심각한 불황과 기업 이윤 감소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연준은 속도 조절을 통한 연착륙을 시도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시카고대 부스경영대와 공동으로 실시한 이코노미스트 설문 조사에서 85%는 미국 경제가 내년에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지오 프리미세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연착륙은 극히 어렵고 역사상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그룹의 데이빗 솔로몬 최고경영자(CEO)도 이날 “경제 둔화에 대비해 운영 규모를 줄여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인력 감축의 원인을 미국뿐만이 아닌 세계 경제의 둔화로 설명했다. 그는 세계 각국에서 늘어나는 국가 부채를 잠재적인 위험으로 꼽으며 “기업 성장이 세계 경제와 연계돼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같은 구상은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경제는 물론 개발도상국 경제까지 위기 신호가 커지면서 내년 세계 경제가 금융위기에 버금가는 부진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이코노믹스는 이날 보고서에서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올해 3.2%에서 2.4%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2009년과 2020년을 제외하고 1993년 이후 가장 낮은 전망치다. 블룸버그통신은 “세계 경제는 30년 만에 최악의 연도 중 하나를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