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필수품 만물상부터 소셜워커·중재자까지
LA 다운타운 홈리스 밀집 지역인 ‘스키드 로우’에서 한 블럭 거리에 한인이 운영하는 만물상이 있다. 바로 한인 2세 대니 박(38)씨가 운영하는 ‘스키드 로우 피플스 마켓’이다.
이 곳은 스키드 로우 텐트촌에 사는 이들과 지역민들이 생활필수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주로 야외에서 보관 가능한 음식과 드링크 믹스 같은 음료 등이 비축돼있다. 더운 날이면 얼음을 팔고 추운 날에는 양말을 하는 피플스 마켓은 단순히 만물상이 아니다. 마켓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직원들은 심리치료사나 소셜워커의 역할을 해주고 때로는 친구가 되거나 중재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난 26일 LA 타임스가 ‘스키드 로우 상점이 흑·한 역사 속 긴장을 해결하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마켓업주 대니 박씨의 이야기를 대서특필했다. 4.29 폭동 여파로 사업체를 잃은 부모 아래 자란 그가 트라우마와 중독의 삶에서 얻은 경험을 장사 밑천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스키드 로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스키드 로우 피플스 마켓은 원래 그의 부모 메이·밥 박씨 부부가 ‘베스트 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던 상점이었다. LA 폭동으로 한인업주들이 하나둘씩 터전을 잃으면서 스크린인쇄업을 하던 그의 부모는 파산을 했고 1995년 스키드로우 지역의 마켓 임대를 인수했다. 생활고를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1984년에 태어난 대니 박씨는 이 모든 과정을 고스란히 겪었고 두순자 사건이 전국적으로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시기를 성장기를 보냈다.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와 리커 스토어를 운영했던 할아버지 가족은 사업이 망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아버지 역시 사업 실패 이후 술에 취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 역시 어려서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해 공공장소에서 만취된 혐의로 체포되기도 했다. 아들이 말썽을 부릴 때마다 아버지는 실패한 이민생활을 탓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급기야 2018년 폭동과 사업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했던 아버지는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UC 샌디에고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오리건에서 꿈의 직장 ‘나이키’에 다니던 대니 박씨는 아버지가 작고하자 직장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돕기 위해 LA로 돌아왔다. 자신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2015년 제일 먼저 ‘베스트 마켓’을 인수해 ‘스키드 로우 피플스 마켓’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외벽을 밝은 색으로 페인트칠했고 마켓 앞에 게시된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 ‘환불 불가’ 사인 위로 ‘기쁨은 저항의 행위’ ‘우리가 먹을 수 없고 영양분을 줄 수 없다면 어떻게 진정한 주권자가 될 수 있을까’ 같은 고무적인 문장들을 함께 붙이기 시작했다.
스키드 로우 사람들을 위한 만물상이 트라우마와 중독의 삶에서 얻은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공간, 커뮤니티의 일원이 되고 커뮤니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상상하며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년째 계속된 ‘스키드로우 피플스 마켓’의 선한 행위는 가끔 보답으로 돌아온다. 마켓 문 앞에서 홈리스 위기를 직접 접한다는 그는 “스키드 로우 피플스 마켓이 건강에 좋은 음식을 팔고 따뜻한 말한마디를 건네는 것으로 심신이 병든 이들을 치유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