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점 해소안 까다롭게 요구, 심의수준 간편서 심화로 격상
미 연방 독과점 규제 당국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려는 대한항공에 독과점 해소 방안을 요구했지만 관련 자료 제출 과정이 상당 기간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미국 측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 대한항공이 시정 방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한항공의 인수합병(M&A)이 각국 정부의 독과점 심사라는 난관에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15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미 법무부는 대한항공에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인한 독과점을 해소할 구체적 방안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 법무부가 요구한 자료를 대한항공이 좀 늦게 제출한 것으로 안다”며 “미국 측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경쟁 제한성이 있다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어 심사 과정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난달 3~6일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의 미국 출장 당시에도 해당 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미 법무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 사건의 심의 수준을 ‘간편’에서 ‘심화’로 올렸다. 특히 미국 2위 항공사인 유나이티드항공이 미 법무부에 경쟁 제한성 관련 문제를 제기한 것이 심의 과정의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대한항공은 미국 델타항공과 ‘스카이팀’, 아시아나항공은 유나이티드항공과 ‘스타얼라이언스’ 항공 동맹을 맺고 있는데, 유나이티드항공은 아시아나가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면 미주 노선과 중국·동남아시아 경유 노선에서 타격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미 경쟁 당국의 항공 결합 관련 심사 기준 자체가 까다로워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 미국의 저가 항공사인 스피릿항공은 ‘기업결합 심사 불승인 가능성’을 이유로 미국 6위 항공사인 젯블루 항공의 36억 달러 인수 제안을 거부했다.
미국 외 필수 신고 국가인 유럽연합(EU)과 중국 등의 심사 과정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기업결합의 가장 큰 관문으로 꼽히는 EU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당장 독과점 가능성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운수권·슬롯을 배분해야 승인을 내주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공정위가 양사의 운수권·슬롯 배분을 요구하면서도 10년이라는 시정 기간을 준 것과 대조적이다. EU 경쟁 당국은 지난해 스페인 1위 항공 그룹인 IAG가 스페인 3위 항공사인 에어유로파를 인수하기 위해 시장에 신규 진입할 항공사를 찾아왔는데도 불승인 결정을 내릴 만큼 항공 결합에 까다로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중국 역시 양사의 결합이 한중 노선에서 중국 항공사들의 수익성을 악화시킬 우려가 높다고 보고 있다.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면 부산~칭다오, 서울~장자제 노선은 합계 점유율 100%의 독점 노선이 된다. 서울~시안 노선도 양사의 합계 점유율이 96.3%에 달한다. 서울~선전 노선(65.3%)과 부산~베이징 노선(66.5%)에서도 통합 항공사의 점유율이 높아진다. 이에 중국 동방항공·남방항공·중국국제항공·선전항공 등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중국 측 입장이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심사 통과가 쉽게 이뤄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계획대로 잘 진행하고 있다”며 “6개국 경쟁 당국의 요구 사항이나 요청 자료, 경쟁 제한 완화 계획 등 필요한 사항을 매일 피드백하며 심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박효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