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가족 아픔 속 재기 노력
범인에 대한 재판은 오래 걸릴듯
아시안, 한인단체 1주기 기념행사
스파 총격 사건의 희생자 현정 그랜트씨는 두 아들에게 매일 밤 전화를 걸어 “사랑해”라는 간단한 메시지를 전했다.
그녀가 죽은지 1년이 지난 현재 두 아들인 랜디와 에릭 박은 자신들의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항상 어머니가 자리잡고 있다.
랜디는 최근 모금 페이지에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하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며 “시간과 사건을 되돌릴 수 없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의 기억을 붙잡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뿐”이라고 적었다.
2021년 3월 16일 21세의 외로운 총잡이 로버트 애런 롱은 3곳의 메트로 애틀랜타 스파에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발포했다. 이 사건으로 8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6명이 아시안 여성이었다. 체로키카운티 법정에서 유죄인정 후 종신형을 선고받은 롱은 풀턴카운티 법정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검찰은 롱에게 사형을 구형한다는 방침이다.
총격사건 후 아시안계 및 태평양 섬주민 출신 미국인(AAPI)들은 교육을 통해 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기금조성에 나섰다. 이들은 100만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전국적으로 피해자를 돕기를 희망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총격 당시 롱은 섹스중독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수사관에게 털어놨다. 사건 당일인 3월 16일 아침 롱은 인근 총기상에 들러 총을 산 후 자살하려 했다고 수사관에게 말했다.
롱은 리커 가게에 들러 버본을 구입한 후 검은색 현대 SUV를 몰고 액워스 소재 영스 아시안 마사지 가게로 향했다. 가게 바깥에서 차에 앉아 한 시간 가량 술을 마신 롱은 가게로 들어가 서비스를 받고, 돈을 지불하고, 화장실에 갔다온 후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총격으로 49세의 시아오지 에밀리 탠, 44세의 다오유 펭, 33세의 딜라이나 야운, 54세의 폴 미셀스가 사망했으며, 5번째 남성인 엘시아스 에르난데즈-오티즈가 부상을 입었다. 롱은 30마일 떨어진 애틀랜타시 피드몬트 로드 골드 스파와 아로마테러피 스파로 차를 몰고 가 한인여성 유영애(63), 박순정(74), 김순자(69), 현정 그랜트(51)씨를 사살했다.
롱은 플로리다로 운전해 가 비슷한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었다고 경찰에 말했다. 하지만 롱의 아버지가 롱의 전화 추적을 도와 애틀랜타 남쪽 150마일 지점인 크리스프카운티에서 당국에 의해 체포됐다.
다음 날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 주지사는 “희생자와 가족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며,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며 “수사가 진행되겠지만 어제 밤은 조지아주의 비극적인 밤이었다”고 애도했다.
◈정의를 위한 싸움
글린카운티에서 일어난 흑인 청년 아모드 아베리 살해사건으로 2020년에 조지아주에서 증오범죄법이 제정 발효됐다. 스파 총격사건 후 법률가들은 이 사건에 증오범죄법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었다.
조지아 아시안 변호사협회 일을 오랬동안 해온 한국계 윤본희 변호사는 총격사건 이후 한 집회에서 자신이 살해당한 여성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우리는 단정하고 조용하며 고개숙이고 받아들이는 소수 인종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있다”며 “우리는 더 이상 고정관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총격사건 다음 날 애틀랜타 한인 아시안 증오범죄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위원장인 김백규씨는 둘루스에 살면서 메트로 애틀랜타에서 두 개의 식품점을 소유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맨처음의 충격과 슬픔이 지나고 나서 6명의 아시아계 여성을 살해한 동기가 무엇인지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76년 한국에서 애틀랜타로 이민 온 김 위원장은 “우리는 길고 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체로키카운티 검찰은 롱이 재판에 회부되면 사형을 구형하고 여성을 표적으로 삼은 증오범죄라고 주장할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들은 신속한 재판을 원했고, 결국 롱은 작년 7월 형량에 합의했다.
풀턴카운티 패니 윌리스 지방검사장은 끔찍한 스파 총격사건의 범인에게 사형을 구형하겠다고 공언했다. 롱은 풀턴 법정에서 4월에 재판을 시작하지만 윌리스 검사장은 최종 판결까지는 최소 2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과제
체로키카운티 스파 가게는 새로운 이름을 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 한 직원은 총격사건에 대해 언급하기를 거부했다. 애틀랜타의 두 스파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골드 스파는 VIP 스파로 불리지만 현재 영업을 하지 않고 있다. 길 건너 아로마테러피 스파 자리에는 임대 간판이 달려 있다.
총에 맞았으나 살아난 엘시아스 에르난데즈-오티즈는 출퇴근 길에 스파 앞을 매일 지나고 있다. 오티즈는 자신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잘 알고 있다. 오티즈는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내 생명을 구해준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몇몇 희생자 가족들은 16일 총격사건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16일 정오부터 오후 2시까지 주청사 인근 조지아 철도 화물 디포에서 ‘아시안 정의 집회-침묵을 깨자’ 행사가 열렸다. 애틀랜타 한인회관에서는 6시부터 7시 30분까지 추모행사가 열린다.
주최측은 이번 행사가 아시안을 겨냥한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높이는데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 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의 슬픔도 계속된다.
고 유영애씨의 아들인 로버트 피터슨씨는 어머니가 가장 그리운 것은 매우 사소한 것들 때문이라고 밝혔다. 어머니의 미소, 한국식 가정 요리, 그와 동생이 어머니 집을 방문해 전구 교체를 도운 등이 가장 그립다는 것이다.
로버트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작은 일들이 그립다”며 “다른 엄마들처럼 가족을 부양하고 삶을 즐기고 친구들고 어울리기 위해 일을 하고 싶어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나와 동생이 그녀를 가장 필요로 할 때 누군가가 우리에게서 엄마를 빼앗아 갔다”고 덧붙였다. 박요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