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세상을 뒤엎은 지 1년 4개월. 이제는 끝나나 싶던 팬데믹이 도무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변종에 변종을 만들어내면서 끈질기게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 지금은 델타 변이가 기승을 부리지만 다음에는 또 어떤 변종이 등장할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백신 접종자는 혹시 감염된다 해도 증상이 가벼워 크게 걱정할 일은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비접종자들. 비접종자들을 중심으로, 비접종자가 많은 지역들을 중심으로 델타 변이 확진자가 대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백신만 맞으면 안심할 수 있는데 그들은 도대체 왜 백신을 맞지 않는 걸까. 백신접종 시작 당시 예약이 몰려 사이트가 다운되는 소동이 벌어졌는가 하면, 백신 맞으려고 멀리 한국에서 비행기 타고 오는 케이스들을 생각하면 백신 거부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백신을 안 맞는 배경을 보면 많은 경우 ‘믿음’의 문제이다. 철석같은 믿음이거나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불신이다.
전자의 대부분은 젊은이들. 젊고 건강하니 바이러스 정도에는 끄떡없다는 믿음이다. 카이저 가족재단 통계에 의하면 백신 비접종자 중 29%는 18~29세의 젊은이들이다. 아울러 UC 샌프란시스코 연구진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18~25세 비접종 젊은이들 중 4명에 한명 꼴은 ‘아마도’ 혹은 ‘절대로’ 코비드-19 백신을 맞지 않을 생각이다. 젊은 나이에 그런 도움은 필요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런가 하면 정부 당국에 대한 깊은 불신이 백신접종을 막기도 한다. 무슬림과 흑인 커뮤니티에서 접종률이 낮은 건 우연이 아니다.
20년 전 9.11 테러 이후 무슬림 커뮤니티는 정부가 주도하는 일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전문가들이 아주 틀릴 수가 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무슬림들은 직접 겪었다고 말한다. 9.11 직후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모여 ‘테러와의 전쟁’을 추진했는데, 그 과정에서 이슬람과 무슬림을 무조건 악마로 몰아붙이면서 있지도 않은 공포를 거짓으로 조장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무슬림 커뮤니티가 당한 차별과 설움이 골수에 박혀 정부가 하는 일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기 어렵다고 한다.
흑인 커뮤니티의 불신은 역사가 더 깊다. 정부당국이 흑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했던 예가 있기 때문이다. 일명 터스키기 매독 연구이다.
연방공중보건국과 질병통제예방센터는 1932년부터 1972년까지 무려 40년 동안 앨라배머, 터스키기 지역 흑인남성들을 대상으로 매독 실험을 했다. 실험대상자들 중 400명 정도는 매독에 걸렸었고, 200명 정도는 감염되지 않은 채 실험에 동원되었다.
가난한 이들은 정부가 무료진료를 해준다고 해서 철석같이 믿었는데 사실은 속은 것이었다. 매독을 치료하지 않으면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알아보려고 치료하지 채 관찰만 한 잔인한 생체실험이었다. 1940년대 페니실린으로 매독 치료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이들은 페니실린 주사 한번 맞지 못하고 죽어갔다.
정부당국이 말로는 백신주사라고 하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불신의 배경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있다.
그 외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부작용 걱정, 주사바늘만 보면 얼어붙는 주사공포증 등이 백신 접종을 피하게 만든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주사바늘 하나에도 숨은 사연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