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인을 꼽는다면 누구인가. 김정일이다.’- 노무현 정권시절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김문수가 한 말로 기억된다.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 사회에서 명함깨나 통한다는 사람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서로 줄을 대가며 나섰던 것이 ‘평양순례’였다.
거기다가 ‘김정일을 알현’하는 기회라도 잡게 되면 그야말로 입신양명의 통과의례를 거친다고 할까. 그런 분위기였다.
그 정황에서 가령 특정 정치인이 김정일에 대해 독재자니 어쩌니 공개적으로 비판을 한다. 그러면 바로 정치적 불이익이 돌아왔다고 한다. 김문수 의원은 그런 쏠림현상의 세태를 꼬집었던 것.
‘한국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정치인을 꼽는다면…’- 같은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어떤 답이 나올까. 이번에는 그 답은 김정은이 아닐까.
북한의 ‘최고 존엄’이라고 했나. 그 김정은의 여동생으로 공식 직함은 북한노동당의 일개 부부장에 불과하다. 그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도 명색이 대한민국의 장관이란 사람들의 목숨이 파리 목숨이 되기 일쑤다. 강경화 외교장관 경질의 예에서 보듯이.
그 뿐이 아니다. 한미훈련을 없애라고 하면 바로 협의하겠다고 아주 공손히 응대한다. 그게 문재인 정권의 현주소여서 하는 말이다.
김여정이 지난해 몹시 진노해 한마디 했다. 북한인권단체들의 전단 살포를 비난하면서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지시했다. 문 정권은 4시간 만에 법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자 여당은 대북 전단 금지법을 강행처리했다.
김여정이 또 노발대발, 한 마디하고 나섰다. 자신이 하명(下命)한 법을 무시하고 탈북민 단체가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남쪽에서 벌어지는 쓰레기…” 운운하면서 처벌하지 않으면 보복하겠다고 협박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화들짝 놀라기라도 한 듯 아주 신속한 대응이 나왔다. ‘경찰이 전단 팀을 구성해 조사하는 만큼 확실히 이행되어야 할 것이다’- 통일부의 반응이다. 경찰청장은 신속하고 철저한 수사를 통해 엄정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이용구 법무차관이 임명 전 술에 취해 택시기사를 폭행한 사건의 진상조사는 100일이 지나도록 뭉개고 있다. 그 대한민국 경찰이 ‘김여정 하명수사’에는 황급하고, 신속하게 나선 것이다.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인권침해국으로 낙인을 찍었다.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막은 김여정 하명법 때문이다. 문 정권이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최초로 미 연방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에 오르는 수모를 겪은 것도 같은 배경에서다.
그런데도 여전히 막무가내다. 문 정권의 통일부와 경찰청은 김여정의 으름장에 허겁지겁, 이번에는 하명수사에 나선 것이다.
통일부 장관은 장관대로, 경찰청장은 청장대로 우물쭈물하다가는 목이 날라 갈 수도 있다는 공포감에 자발성의 발 빠른 처신에 나선 것인가. 아니면….
사실 그 이유야 빤히 짐작이 간다. 인권이니, 비핵화니 하는 것은 뒷전이다. 김정은과 여정, 그 오누이에게 잘 보여 정상회담 쇼를 한 번 더 하는 거다. 그것만이 지지율 만회에, 정권 재창출의 지름길이다. 청와대 수뇌부의 머리엔 뭐 이런 생각으로만 꽉 차 있어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남북대화 쇼 구걸을 위해서라면 김여정의 말 한 마디에 굴복하는 것은 물론 참혹한 인권유린의 공범이 되는 치욕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문 정권의 본령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김여정의 막 말에 계속 끌려 다니는 대한민국정부. 그 참담한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