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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칼럼] ‘블랙리스트’와 ‘물갈이’

지역뉴스 | | 2021-02-18 10:10:42

뉴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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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권 첫 환경부 장관이었던 김은경 씨가 지난주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김 전 장관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산하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하고 청와대 낙점 인사 임명을 위해 불법적인 개입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 왔다. 김 전 장관은 “국정 철학을 공유한 내정자를 지원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전 정부에서도 관행적으로 이뤄져 왔다”고 주장했지만 실형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불법적 관행이 피고인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다”며 중형을 선고했다.

 

김 전 장관의 실형선고 소식을 전한 언론의 보도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환경부 블랙리스트’라는 제목이 달렸다. 인사를 둘러싼 김 전장관의 직권남용 혐의를 ‘블랙리스트 스캔들’이라는 프레임으로 간단하게 정리해 버린 것이다.

 

김 전 장관의 혐의를 ‘블랙리스트’로 규정한 보도들이 쏟아져 나오자 청와대는 즉각 반박에 나섰다. “블랙리스트는 특정 사안에 불이익을 주기 위해 작성한 지원배제 명단을 말하는데 그런 명단이 없었던 만큼 이 사건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 재판부의 설명 자료 어디에도 이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청와대가 드러낸 불만의 요지였다.

 

‘블랙리스트’는 흔히 ‘요주의자 명단’을 뜻하는 영어 단어이다. 주로 수사 기관 등에서 위험인물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작성하는 명단이다. 나를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들이나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은 명단은 고대시대부터 있었다. 로마시대의 ‘Proscript’라는 명단에는 감옥에 수감된 죄수들과 적군들, 그리고 정치적 라이벌 등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블랙리스트’라는 용어는 영국의 찰스 2세가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아버지 찰스 1세를 죄인으로 몰아 사형을 선고한 정적들의 이름을 모은 명단을 만들고 그것을 이렇게 부른 데서 기인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블랙리스트’는 권력이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자신들이 필요한 영역에서 추방하려는 자들의 이름을 담은 명단을 뜻하게 되었다.

 

역사적 기원이 어찌됐던 ‘블랙리스트’라는 단어는 이제 정치의 영역을 벗어나 문화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심각하고 부정적인 것은 정치권력에 의해 작성되고 실행되는 ‘블랙리스트’이다. 정치권력이 국가기관들을 동원해 반대의견을 나타내는 사람들(주로 문화예술인과 학자 같은 민간인들)의 명단을 만들고 이들을 탄압 혹은 억압하는 행위는 민주적으로 위임받은 권력의 행사 범위에서 크게 벗어난다.

 

그렇다면 김 전 장관이 산하 기관 임원들의 사표를 받으려 한 행위를 과연 ‘블랙리스트’ 작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법원 판결 내용을 보면 김 전 장관이 산하기관 임원을 바꾸는 과정에서 일처리를 말끔하게 하지 못하고 재판 과정에서도 너무 자기변명으로만 일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권력이 바뀌면 구성원들의 얼굴도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새로운 권력의 국정기조에 부합하는 인물들로 채우는 게 마땅하다. 국가들에 따라 규모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구성원의 ‘물갈이’는 권력교체의 가장 기본적인 현상이다.

 

김 전 장관이 실형을 선고 받은 같은 날 미국에서는 연방법무부가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된 연방검사들에 대해 대대적인 정리 작업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무려 56명에 달하는 연방검사들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할 것이란 내용이었다. 4년 전에는 트럼프가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연방검사 46명에 대해 일괄사표를 요구한 바 있다.

 

냉혹해 보이지만 이것이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새로운 권력은 전임자가 임명한 공직자들의 거취를 결정할 권리가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연방검찰 물갈이 조치에 ‘블랙리스트’라는 프레임으로 비판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김 전 장관의 실형과 트럼프 임명 검사들의 줄퇴진은 ‘블랙리스트’와 ‘물갈이’의 경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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