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세들 공직 진출 불이익 해소 기대
다섯 차례 헌법소원 7년 만에 승소
한국시간 24일 헌법재판소가 내린 선천적 복수국적 관련 미주 한인의 헌법소원에 대한 ‘헌법 불일치’ 판결은 미주 한인사회의 최대 숙원의 하나이던 병역 관련 국적법 독소 조항이 개정될 수 있는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결정은 국적법 중 병역준비역에 편입된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국적이탈을 제한하는 조항(제 12조 제 2항 본문 및 제 14조 제 1항 단서 중 제 12조 본문에 관한 부분)이 청구인의 국적이탈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위헌임을 명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배경
선천적 복수국적이란 출생을 통해 한국 국적과 출생지인 외국 국적을 함께 보유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 출생했을 경우 1998년 6월14일 이후부터는 출생 당시 부모 중 어느 한 사람만이라도 한국 국민이면 한국 국적을 취득 (부모양계혈통주의)하게 된다. 따라서 외국인과 결혼을 한인의 자녀도 포함되게 됐다.
이로 인해 미국 태생 한인 2세라도 부모 중 어느 한쪽이 한국 국적자이면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이 부여되고 만 18세가 되는 해 이전까지 국적이탈을 하지 않을 경우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다 하거나 만 40세가 되기 이전에는 한국 국적이탈이 허용되지 않아 공무원 등 공직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등 피해를 받아 왔다.
또 본인이 선천적 복수국적자 임을 전혀 모르는 한인 2세들이 미 주류사회 진출시 신분확인란에 잘못 기재했다가 위증 등으로 예기치 못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다.
■경과
이번 헌법소원을 이끈 한인 전종준 변호사(워싱턴 로펌 대표)는 서울대 외국인 장학생에 합격하였던 다니엘 김이 선천적 복수국적자임이 밝혀져서 입학이 취소되고 한국행을 포기하게 된 일을 계기로 2013년 9월 1차 헌법소원을 진행했으나, ‘청구기간이 지났다’라는 절차상의 이유만으로 각하됐다.
다음에는 큰아들 벤자민 전을 청구인으로 하여 2차 헌법소원을 진행했으나, 똑같은 이유로 또 각하됐다. 이후 방향을 바꿔 미국 공직 진출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2014년 9월 폴 사를 청구인으로 4차 헌법소원을 했으나, 공직 진출은 “극히 우연적인 사정에 지나지 않으므로” 라는 등의 이유로 합헌 결정(5대4)이 내려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번에는 혼혈인인 멜베이를 청구인으로 제 5차 헌법소원을 내 ‘4전5기’만에 헌법 불일치 판결을 받아낸 것이다.
이번 5차 헌법소원 청구인인 멀베이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인 영주권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자동적으로 복수국적을 갖게 됐고, 관련 규정을 뒤늦게 알게 됐지만 비합리적이고 복잡한 국적이탈의 과정으로 인해 사실상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특수군에 입대를 원했지만 복수국적 때문에 지원이 좌절되기도 했다고 전 변호사는 전했다.
■의의 및 전망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지난 7년간 사비를 들여 헌법소원을 이끌어 온 전종준 변호사는 2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2013년부터 원정출산도 아니고 병역을 기피할 목적도 없는 미주 한인 2세 선천적 복수국적자들에게 국적법을 확대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으나 그때마다 국민정서와 병역평등 부담의 원칙을 내세운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며 “4전5기의 정신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헌법소원을 제기한 결과 7년 만에 드디어 헌법소원에서 승소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향후 한국 국회는 내년 9월 말까지 해당 국적법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 전 변호사는 “원정출산과 병역기피와 관련 없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에는 18세가 될 때 한국국적 자동 말소를 법제화하고, 또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조부모나 부모에 의해 한국 호적에 올라가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자의 경우는 언제든지 국적이탈을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