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의 새와 땅 위의 동물 바다의 물고기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 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식물은 눈은 없지만 감지 능력과 전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풀밭에 누가 들어가면 자기네들끼리 전달을 합니다.(흔든다든지. 서로 부딪히면서)
특히 사람의 눈은 단순히 보는 역할 이외 영적인 세계를 통찰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누가복음 24장에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사람이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자기네들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낮선 길 손님인냥 생각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두사람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십자가의 사건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 그들과 함께 동행 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상상도 못했고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 이유를 누가복음 24:16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눈이 가리워 져서 그 인줄 알아 보지 못하거늘..”우리가 이미 잘 아는대로 이 두사람은 열두제자는 아니었지만 3년동안 예수님 가까운 거리에서 예수님을 지켜보고 따르고 행동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동행했던 에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은 영적인 눈이 어두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바라본 예수님이 그들에게 한 마디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이 말을 듣자 그들은 슬픈 기색을 띄고 머물러 서더라…그 때서야 비로소 영적인 눈이 떠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현대 크리스챤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나와 항상 함께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성도들 뿐만 아니라 우리 목회자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우리들 보다 10배 20배 100배 더 힘든 목회를 했습니다.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입지도 못했고 자식들도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습니다. 오늘날 한국의 왠만한 교회 목회자들의 자녀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안 보내는 분들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선배들은 자녀들 유학의 꿈, 꿈도 꾸지를 못했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현재 우리들의 시대는 얼마나 좋은 환경과 여권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많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절망하고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동행자의 존재를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이 사실을 잊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동행하신다 이 믿음만 있다면 우리는 낙심할 필요도 없고 절망할 필요도 없고 포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눅24:31)을 보십시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희 눈이 밝아져 예수인 줄 알아 보더니” 영적인 눈이 떠여지니까 예수님이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누이 떠여지면 통찰하는 힘과 기능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내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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