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다녀온 친구를 달포만에 만났다. 시차적응도 않된 상태인데도 모습이 환하고 예뻐보인다. 한국을 다녀오기만 하면 시종여일하게 젊어지고 예뻐지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칭찬같은 인삿 말을 건넸더니 친구는 하얀 거짓말도 할 줄 아냐며 눈을 흘긴다. 한층 젊어 보이고 예뻐졌다고 응수를 했지만 머리를 짧게 다듬어서 그렇게 보일 뿐이란다. 그랬구나 하얀 거짓말이란 말이 있었지. 거짓말에도 색깔론이 있다는게 절묘하다. 새하얀 거짓말도 있고 새빨간 거짓말도 있고 시커먼 거짓말도 언어의태두리 안에서 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진실의 확고성을 위한 효과의 존재가치로 넌즈시 인정 받으려는 기묘한 현상의 잔재인 것 같다. 빤히 드러날 만큼 속보이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은 새빨간 거짓말의 유개념 범위로 구분짓고, 시커먼 거짓말은 악의 가득한 악성 거짓말로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이 만들어낸 사회악으로 대국민적 거대한 사기극으로 남게된다. 거짓말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자하는 악습의 찌꺼기로 거짓말을 통해 상황을 해결하려거나 동정을 받으려는 묘하고 야릇한 잘못된 감정의 발로라고 여겨진다.
선의든 악의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돕고자 하는 선의의 발로가 거짓말의 발단이 되기도 하지만 거짓말은 상대방을 속일 뿐 아니라 자신까지도 속이게 된다. 양치기소년 같은 주위의 관심을 끌어보자는 애정결핍형 습관적 거짓말은 종국엔 난처한 상황을 불러 들이기도 한다. 진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곤란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불가피한 필요에 의한 것이란 상황을 이해하게도 되지만 번번히 계속되면 신뢰를 잃을 수 있거니와 거짓말은 또다른 거짓말을 불러들이게 된다. 회의적인 거짓말은 선거공약으로 당선을 위한 수법이나 기교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녀들이 강아지 구해주면 밥도 손수 챙기고 산책을 물론 목욕도 본인이 다 할거라는 약속이며, 입시에 목메인 자식들의 요구사항을 대학가면 해준다는 공약도 막상 대학생이 되고나면 무산되기 십상이다. 교과서 위주로 수업에 충실했다는 수석합격자들의 공통된 인터뷰 또한 일목요연한 답으로 진행중이다. 거짓말의 속임수는 들키지 않을 때에만 힘을가진다. 거짓말을 윤활유라는 착각으로 거침없이 사용해온 노련한 세일즈나 사업에 성공했다는 모순들. 거짓말을 소통의 수완이며 처세의 기교로 공존하는데 기여한다는 논지는 허언이요 망언이다. 무책임한 낭설이다. 거짓말이 모티브가 된 문학작품들도 거짓말이 사회생활에 쓸모가 있다거나, 때론 매혹적으로 접근해오는 거짓말을 능력이라 수긍하는 자세로 받아들인다면 바늘도둑 소도둑 되듯 가볍게 즐기던 거짓말이 가지를 뻗어 우람한 나무가 되어 대사기극 까지도 도전하게 만든다는 내용들로 그득하다.
하지만 거짓말이 인간적일 수 있다는 범주는 하얀 거짓말에서 만 유효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결혼식에서 신부를 미인이라고 칭찬해주는 슬기 라든가, 나이들어버린 초로의 부인을 곱다고 이야기 해주는 위트도.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했을 때 ‘차가 밀려서 늦었다’는 식의 거짓말은 속아주는 미덕으로 받아들인지 이미 오래된 고전이다.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 젊어지셨어요’ ‘오늘 유난히 더 예뻐보인다’ 는 식으로 고의적으로 피해를 주거나 속이려 한 것이 아니라면 하얀 웃음을 위한 거짓말 쯤으로 간주해도 될 것 같다.
소화제를 치료제로 믿고 복용한 환자가 회복하는 현상인 플라시보 효과처럼 교육이나 치유에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성적이 부족한 자녀에게 ‘잘하고 있다’는 암시 만으로도 좋은 성적을 얻게되는 피그말이온 효과도 있지않은가. 불치병이나 말기암 환자에게 희망을 붙들 수 있는 메세지 효과도 필요한 거짓말의 카태고리에 묶어주어야 할까보다. 사랑과 배려가 담긴 하얀 거짓말이 주는 센스나 평화 정도는 가볍게 누려도 되지 않을까하는 심경이 기웃거려진다. 지친 삶의 불씨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구조 하듯 희망과 빛으로 이끌어내어 하얀 웃음을 유발시키는 기운은 삶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라서. 오 헨리의 단편소설 마지막 잎새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