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나만을 위한 단 하루만의 시간이라도 가져보고 싶다. 모든 일상을 접어두고 케이불을 통한 매체도 차단하고 마음까지도 비워내며 모든 관계에서도 떠나있는, 세상과 별리된 무중력의 공간에서 마음 껏 유회하고 부양하며 무성이라면 더욱 좋을 무념무상의 시간을 즐겨보고 싶은 떨림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일탈과는 조금은 상충된, 은은하고 뽀오얀 은하계를 방문하며 빛의 실루엣에 어울려 끝없는 사사로운 공간 속에서 유영하며 하냥 환상에 젖어있고 싶은 정황 앞에 사뭇 당황스럽다. 시린 바람과 추운 떨림의 겨울 끝자락에 살포시 봄 내음이 다가오고 있어 그런가 보다. 나른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기지개일까. 불가능을 꿈꾸어보는 여유를 가져보고 싶음일까. 3월 들녘으로 들어선 설레임이리라. 나란히 줄을 세우듯 반듯한 일상들을 나열해 가다보면 조금은 엇물리는 하루들로 조정해봄직도할 것 같다.
마치 좌석에 앉을때 앞 사람의 바로 뒤에 앉는 것 보다 서로 어긋나듯 비켜나게 앉음으로 정면을 주시할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것 처럼.
가끔씩은 하루 나들이를 만들어내면서 바둑판 같은 일상을 흰돌과 검은 돌로 서로의 영역을 넓혀가듯 일탈이라는 흰돌과 구태의연한 일상이라는 검은 돌의 유연한 접전을 엮어내면서 잠깐씩의 일탈이 소도구로 사용된다면 하루들이 윤기를 더해가며 아름답고 건강한 여유로움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고국의 3월은 본능적인 예견 같은 예민한 육감이 어수선한 감각에 사주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해동기(解凍期)의 나른함과 소요와 아우성으로 버벅거리고 있는 고국의 불안정이 염려스럽다.
아지랑이가 나불거리는 봄을 기다렸는데 새끼줄 엮듯 분노와 목메임으로 듣고싶지 않은, 보고싶지 않은 소식이 줄줄이 엮여지고 한숨이 잦아들기 전 또다른 양심선언으로 부끄러운 작태가 벗겨지고 있다.
옳음이라는 정의로움 조차도 모호해지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함 앞에 황망해질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지난 날에도 정치적으로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해온 민족의 끈기를 보아왔기에 위기가 또다른 기회를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역동성있는 민주주의로 거듭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의로운 민주주의가 든든히 자리잡히기를 소원 해본다.
고통 위에 피어나는 만주주의 꽃이 3월의 들녘에서 싹이 트이고 옳음과 사랑과 정의가 뿌리내려 고국의 마음을 녹여줄 따스한 봄날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계절의 침잠이 무르익었던 겨울들녘이 풀리고 있기에 3월의 떨림을 흡족하게 받아들여야 하리라. 3월 내음을 흠씬거리게 만드는 이른 아침, 깨긋하고 투명한 온기가 바람에 실려온다.
어찌 요즘 날씨가 수상스럽다. 이미 봄이 열려버린 듯 꽃나무들이 움을 틔우고 있으니 말이다. 본디 3월은 다양성을 품고있는 계절의 건널목이라서 부산스럽긴하나 다정다감하다. 기미년 3월 1일을 기억하게 하고, 강남으로 간 제비가 기다려지고, 보리밭 사잇길을 걸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해주는, 드러나지 않게 살며시 적막을 깨고 다가오기에 기다려지지 않을 수 없는 예쁨 받기에 모자람 없는 계절이다. 누가 부추기거나 꼬드긴 것도 아닌데 성가스러울 만큼 산으로 들로 불러대는 소리가 부산스럽고 시끌덤벙해지는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하냥 고요로움과 착찹함을 녹여내는 3월의 바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의 영역을 넘보려는 듯 3월 들녘에 머물고 있다.
3월의 떨림이 귓전에 일러준다. 어둡고 남루한 긴 겨울을 건너오기까지 숱한 외침을 입에 물고, 깊숙한 상처는 동토에 녹이며 연한 생명줄을 내밀어야 하는 치열함을 어디에도 내놓지 않고 토양 속으로 풀어내며 견디어 왔을 것이라고. 3월 들녘은 계절의 베풂을 입고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빛줄기에 기대며 사색에 농익기도하고 하늘과의 밀회를 꿈꾸는 듯 3월 한나절은 게슴츠레하다. 푸르른 모색으로 질주하고픈 3월의 들녘은 은은한 떨림으로 3월의 내음을 상큼하게 뿜어내고 있다. 온통 꽃들의 향기로 가득할 3월 들녘으로 나서야 할까보다. 포근하고 너그러운 3월 햇살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