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우리가 일을 하다가 실수를 저질렀을 때 간혹 구실을 들어 변명하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관용이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변명은 어리석은 사람만이 저지르는 술수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개인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스스로도 고결함과 환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실수의 결과로 인한 사태를 단시간 안에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화수와 같습니다. 변명이란 타오르는 불을 끄려 하지 않고 부채질하는 행위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 탓이라고 말하는 것, 그것은 책임을 감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기도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처럼 진지한 마음으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종종 실수 때문에 누군가를 화나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그가 화를 내기 전에 먼저 사과한다면 화의 농도를 엷게 할 수 있습니다. 또 그가 비난하기에 앞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비난해 보십시오. 사람은 자기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에게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게 마련입니다. 즉, 그러한 태도는 약자에 대한 강자의 아량입니다.
어느 누가 강자의 위치에서 덕을 베풀고 싶지 않겠습니까? 페르난도 위렌은 광고와 출판용 일러스트를 출판사에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대개 이런 상업용 일러스트는 매우 섬세하고 정확해야 하지만 출판사의 광고나 출판 시기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다급하게 제작되기 일쑤입니다.
그러므로 사소한 실수가 종종 일어나곤 합니다. 위렌의 고객 중에는 까다로운 미술 편집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소한 실수를 찾아내 신랄한 비난을 퍼붓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위렌은 그가 의뢰한 일을 서둘러 끝냈다가 시빗거리를 제공하고 말았습니다. 조그만 실수를 발견한 미술 편집자는 그를 사무실로 호출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일을 너무나 성의 없이 처리한 데 대하여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위렌은 그 잘못이 분명 자신에게 있었지만 급하다고 재촉한 출판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일찍이 터득한 자기 비판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선생님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려왔는데 언제나 이 모양이군요. 이 엄청난 실수를 어떻게 해야 하죠? 정말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위렌이 이렇게 자학하듯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절망스러운 표정을 짓자 미술 편집자의 비판적인 어조가 돌연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감싸주는 것이 아닌가요. “아아,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이번 것은 실수라 해 봤자 사실 대수로운 게 아니에요.” 위렌은 재빨리 그의 말을 막으며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무리 사소한 실수라도 회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주지 않겠습니까? 좀 더 신중해야 하는데… 혹시 시간이 좀 있다면 제가 다시 그려와도 괜찮겠지요?” 그러자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만류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위렌은 트집을 잡는 것을 취미로 삼던 미술 편집자와의 대결에서 승리했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서 다른 일거리까지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