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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모순

지역뉴스 | | 2024-11-01 07:51:26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할머니 소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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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자(시인·수필가)

 

하이웨이 285에서 톰 모어 랜드 인터체인지로 차선을 바꾸려는 지점에서 갑자기 이쪽 차선으로 끼어든 차가 요란한 엔진소리를 울리며 내달린다. 연이어 여러 대가 하이웨이를 장악하며 자동차 경주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어수선하고 떠들썩한 소음을 내뿜으며 순간 시야에서 멀어졌다. 조수석에 앉았는 데도 온 몸에 식은 땀이 난다. 손발이 저릿하니 쥐가 난다. 이런 상황이 예전 애틀랜타보다 잦아지고 있음이 염려스럽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정신도 정신줄을 놓칠 것 같다. 하이웨이로 들어서면, 무에 그리 급한 지 차선을 계속 바꾸면서 추월에 추월을 거듭 시도하며 달아나듯 달리는 차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하지만 그렇게 무리를 해가면서 달린다 한들 얼마만큼의 시간 단축 효과를 얻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주어진다. 서둘더라도 위험 지경을 이르지 않도록 침착하게 서두르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유년 시절, 가족이 모두 움직여야 할 일이 생가면 할아버지께서는 언제나 대문 앞에서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천천히’ ‘천천히’ 하시면서 어김없이 서두르라는 말씀을 잊지 않으셨다. 할아버지 말씀처럼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우리 일상에 반영된다면, 순간적 판단 능력과 견디며 버티는 인내의 매치가 잘 어우러지면 더 없는 생활 속의 지혜가 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젊은 날에는 서두르는 것에 치중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천천히 쪽으로 기울어지고 신중하고 듬직하고 묵직한 무게감이 있는 쪽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 같다. 서두르는 것보다 천천히가 더 쉬워진 나이 탓으로 돌려보지만 슬기로운 삶의 지평으로 인도해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우리 속담도 있듯 자연스럽게 쉬엄쉬엄 천천히 걷다 보면 그 걸음새에서 얻어지는 것도,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것도 있다는 것이다. 인생도 굳이 서둘러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 태어나는 것도 세상을 떠나는 것도.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이 글쓰기를 이어오는 동안 이따금씩 생각이 났다. 천천히와 서두르다는 반대말인 것인데 이런 모순을 지닌 말들이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 하면서 역설이거나 모순되는 말들을 메모 해두기도 했다. 모순 어법의 예를 들자면 도시 촌놈, 마른 비만, 미운 정, 오래된 신조어, 사랑의 매, 소리 없는 아우성, 가상 현실, 대안적 사실, 공공연한 비밀, 금으로 만든 옥새, 살아있는 화석, 작은 거인, 동물의 인권, 동물의 일생, 많이 적다. 문맹 컴맹, 비닐 봉지. 안전사고, 야채 육수, 작은 대문, 콩 우유, 큰 소문, 피해를 주다, 허위 사실, 그린 홍합, 검은 백조, 침묵의 소리, 등이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천천히 서두르라는 말은 라틴어 명언이었다. 로마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즐겨 쓰던 말로 그의 좌우명이자 인생 교훈으로 삼았다고 한다. 모든 일에 성급함을 금기시하며 또한 태평한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우리네 정서로는 ‘천천히 그리고 빨리’ 정도로 비견될 듯 하다. 말 자체는 모순이다. 앞 뒤가 맞지 않는 논리적 모순이지만 두 낱말이 결속되면 ‘천천히 침착하게 하면서 서두르자’는 새로운 관념으로 인식하게 된다. 모순 어법이긴 하지만 개연적인 확실성 있는 구체적 개념이 정립된다.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아마 지도자 자리를 고뇌하며 각성과 뉘우침으로 나라를 성찰하려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휘하 장군들 훈련 과정에서도 서두르지 않으며 강한 훈련으로 장군이 되기를 강조하며 훈시했다고 한다. 매사에 서두르지 않으면 큰 실수 없이 간다. 서두르다 보면 실수가 많아진다. 일에 균형과 중심을 잡으라는 것으로 지나치게 서두르면 장기적으로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을 염려한 것이리라.

이태리 속담에도 ‘천천히 가는 사람은 실수 없이 간다. 실수 없이 가는 사람은 멀리 간다’ 는 말도 같은 맥락 관통 명언이다. 인간 일생이 짧은 듯도 하지만 이 또한 그리 간단하지 않음이라 긴 안목으로 멀리 바라보는 삶을 추구하는 사레는 유사이래 많은 주목을 받아왔다. 이러한 속담이나 격언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고 지금 이 시대에 까지 이어져오고 있음은 역사 속에서 많은 공감을 얻어냈기 때문일 게다. 예로부터 전수되고 있는 명언들은 옛날 그 옛날에 발생했던 문제와 수습하는 수단, 방식이 지금 시대의 방법론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볼 때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길은 큰 차이 없이 살아왔구나 싶다. 문명의 발달로 문화가 시대 따라 새롭게 형성 되었을 뿐 사람사는 지혜나 기법이나 형식은 여전히 연연히 흘러온 것임을 공감하게 된다.

모순이란 두가지 판단이나 사태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로 두 판단이 대립하며 상호 관계가 논리적 모순으로 상반되면서 비리, 배반, 부조리를 양산하게 된다. 어떤 사실의 앞과 뒤, 또는 기정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지만 새겨보면 삶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모순들이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개념이 부상되기도 새로운 국면을 이행함으로 인식을 넓혀갈 수 있는 경향도 있음이라서 주의를 기울이면 세상살이가 보다 지혜로워질 것이고 한결 순화되고 부드럽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싶다. 역사 흐름을 따라 지혜인들이 남긴 명언들이 지금에까지 남아있어 우리네 고정 관념을 일깨워주고 있음이 신선하다. 매사에 천천히 서두르리라 조용한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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