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시, 봄길 , 정호승 )
인생은 길이다. 그 누구도 걸을 수 없는 자신만의 길을 살다 간다.
길이란 도(道) 자는 자신만의 머리를 짊어지고 인생길을 항해한다는 뜻이다. 생각하면 모르고 살아온 내 인생길에 내 자신의 머리를 받쳐들고 뚜벅 뚜벅 걸어 왔다니… 생각하면 부끄럽고 사람 노릇하지 못하고 살아 온 내 삶이 한없이 부끄럽기만하다. 얼마나 많은 날 길을 잃고 헤매였고 한치의 길이 보이지 않아 낮선 땅에서 방황했던가. 복사꽃이 바람에 만발한 눈꽃을 맞으며 한 그루의 나무도 이봄을 위해 이토록 장엄한 꽃 잔치를 위해 그 눈보라치는 겨울을 흙속에서 얼마나 아프게 살아왔을까…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부끄럼, 사랑으로 살아오지 못한 나를 이 봄 다시 돌아본다.
이 봄, 내 인생길에 사람의 길을 사랑으로 묵묵히 걸어오신 어른이 다시 그립다. 오늘처럼 길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한줄기 희망과 사랑의 길을 걸으신 어른이 다시 생각난다. 내 젊은 날 멀리서 가까이서 내게 길이 되신 ‘짐 레이니 대사님’ 묵묵히 봄길을 걸어오신 그 사랑의 사람, 눈꽃 휘날리는 봄날에 사랑이 되어 찾아 오셨다. “해물 순두부를 좋아해요” 순수한 한국말로 우리 토종 음식을 좋아하신 그 어른, 국경을 초월한 뜨거운 휴머니즘, 에모리 대학에서 16년 총장을 지내시며 에모리 대학을 남부의 명문 대학으로 자리매김하시고, 국경을 초월한 한국인 사랑은 마치 옛 선비를 뵙는듯 따뜻한 정이 이 봄 다시 그립다. 1950년 예일대학 시절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부름받고 6.25전쟁을 함께 겪으시며 민족 상잔의 피비린내 난 전쟁으로 길에 버려진 아이들의 시체를 부둥켜 안고 그의 인생에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잿더미 속에 버려진 아이들, 인류가 찾고자하는 삶의 참 의미는 무엇인가… 신이 계시다면 신은 과연 어디에 계신가… 경제학으로 성공한 인생을 꿈꾸던 젊은 청년 레이니는 잿더미속에 어린 시체를 부둥켜 안고 깊은 고뇌와 방황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았다. ‘내 한 목숨을 위해 살 수는 없다’(Not for Self) 그는 긴 방황 끝에 인류를 위해 저 고귀한 한 생명을 위해 살고자 신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는 한국에서는 연세대학에서 교수로 언더우드 박사와 한국 선교사로 일하셨다. 그는 한국 전쟁의 역사속에서 김구 선생 피살, 수많은 독립투사들 속에서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으신 산 증인이셨다. 내가 짐 레이니 대사님을 만나 뵌 것은 1985년 남편이 에모리 캔들러 스쿨에 있을 때, 그랜 메모리얼 처치에 한 교인으로 앞뒤 좌석에서 5년을 모시면서 ‘오셔서 반갑습니다’ 유창하신 한국어로 맞이 하시고, 소매가 다 헤진 와이셔츠, 털털거린 낡은 승용차를 타시고, 검소한 모습이 마치 시골 할아버지 모습이셨다. 16년 에모리 총장님 역임 후 주한 미대사를 역임하신 한국 사랑은 어느 한국인 조국 사랑에 비교할 수 없다. 정신대 할머니의 에모리 화이트 홀에서 증언 하실 때 맨 앞 좌석에서 두분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부족한 내가 ‘나라 사랑 어머니회’에서 일할때 ‘한국인이 드린 최고의 어버이상’을 두분께 드렸다. 얼마 전 ‘세계 평화상’을 대사님께 수여 하실 때, 치매로 누워 계신 사모님이 함께 하실 수 없는 아픔을 하소하셨다. 인생길 그 아름다운 약속을 이루시고 사랑의 사람이 되어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끝까지 사랑으로 봄길이 되어 걸어가신 큰 어른, 그 절대적인 사랑을 인류를 위해 이웃과 함께 나누신 짐 레이니 대사님, 이 봄 다시 만나뵙고 싶은 ‘사랑의 사람’이시다.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