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부동산 업계가 주택 판매자의 독박 중개 수수료를 근간으로 한 사업 모델에 근본적인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생존 조건을 뒤흔든 변화의 단초는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로 거슬러 올라 간다. 이날 미주리주 캔자스시티 연방법원 배심원단은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와 대형 주택 부동산 중개업체 2곳들이 주택 판매 중개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높게 유지하기 위해 담합한 협의를 유죄로 인정하고 지난 2019년 집단소송을 제기한 미주리주와 인접 지역의 주택 판매자 50만명에게 18억달러를 배상하라는 평결을 내렸다. NAR은 이날 상고를 통한 법적 다툼에 나설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 17일 NAR은 상고 대신 사전 합의를 통해 4억1,800만달러의 합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함께 주택 판매자(셀러)가 매물 등록 시 구매자(바이어) 측 중개 수수료를 사전 고지하고 부담하는 업계 관행도 폐지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지난해 10월 미주리주 연방법원 배심원단의 평결 이후 약 4개월 만에 나왔다. 연방법원이 이번 합의를 승인하면 변경된 규정은 오는 7월부터 적용될 예정이다.
연방법원의 최종 승인이라고 하는 절차를 남겨 놓고 있지만 이번 사전 합의는 주택 매매에서 판매 가격에 5~6%의 중개 수수료를 주택 판매자가 홀로 부담하는 현행 수수료 지급 관행에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주택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 중개 수수료를 놓고 협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택 판매 가격의 일정 비율이 아닌 판매자와 구매자의 협의로 결정되다 보니 판매자 에이전트의 중개 수수료 선지급 관례도 불가능해진다. 판매자가 구매자의 에이전트 수수료 지급을 거부하면 구매자와 그가 고용한 에이전트는 협상을 통해 중개 수수료를 결정하게 된다.
이는 에이전트의 주 수입원인 중개 수수료 산정과 지급 방식을 구조적으로 바꾸는 동인이 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부동산 업계는 사전 합의로 인한 새로운 중개 수수료 산정 방식의 변화를 단정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라고 말한다. 당장 현행 체제를 유지한다고 해도 중개 수수료는 3% 이하로 줄어드는 것은 확실하다. 수수료율이 아닌 선불 정액제도 도입 가능이 높다. 아니면 에이전트와 협의로 중개 수수료를 시급으로 계산해 지급할 수 있다. 특정한 요구 사항, 예를 들면 매물 집 둘러보기, 주택 하자보수 점검, 최종 계약서 검토처럼 에이전트 업무를 메뉴화해서 수수료를 지급하는 방식도 나올 수 있다. 아예 중개 수수료를 경쟁 입찰해 에이전트를 정하게 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되든 부동산 에이전트의 수입 감소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바로 한인 부동산 업계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판매자 측 에이전트에 비해 구매자 측 에이전트의 수입 감소는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보게 된다. 특히 에이전트를 시작한 지 1~2년이 채 안된 소위 ‘새내기’들의 업계 이탈이 더욱 클 것이라고 보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앞으로 2~3년 내 한인 에이전트들의 구조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업계 관계자들도 많다. 지난해 김희영 부동산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활동한 한인 에이전트는 418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가운데 업계를 떠난 이는 111명으로 26.5%를 차지했다. 이들 중 1년 경력의 에이전트들이 35%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업계 경쟁에 취약하다는 의미다. 새로운 중개 수수료 제도가 자리잡기 전까지 신참들의 업계 이탈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월스트릿저널은 전국 160만명의 에이전트 중 절반 정도가 업계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에선 중개 수수료 변화에 따른 에이전트 업계 이탈이 정화 작용을 하는 순기능이 있을 수 있다는 긍정론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한인 부동산 업계는 생존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남상욱 LA미주본사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