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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고독의 유익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2-26 13:26:03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김정자(시인·수필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내성적이고 조용한 일상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면 무대에서 맡은 배역을 다 소화해내고 무대를 내려와야 하는 배우같은 느낌이 들곤 하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 느끼는 안정감이 너무 편안하고 좋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중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닐 때가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빈 센트 반 고흐’ 또한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 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있던 페르소나에서 벗어나 재충전을 위해 홀로의 공간을 가진다고 했다. 고독의 유익은 얼마든지 생을 채워갈 수 있는 풍요가 담겨있다.

이 모든 사실이 객관적인 이론이라면 필자의 입장에선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터라 하루들을 조금이나마 시간을 늘려서 쓰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곤 하기에 오히려 고독을 즐기고 싶음이 당면 상황이다. 고독은 인생길을 동행하는 일행으로, 동반자로 함께 걸어갈 가족이나 친지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크다. 해가 갈수록 외롭다는 푸념을 토로하는 노년층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되는 것이 이즈음 세상 풍경치기다.

생존하는 모든 것들은 다난하고 분주한 움직임 속에서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때론 상처로 하여 아프기도 하면서 긴 여로를 걸어왔지만 생의 끝자락만큼은 실속 있는 옹골진 붓질을 남겨 두고 싶은 열망은 아직 식지 않고 있다. 인생 여정을 걸어온 족적 끝부분 쯤엔 A-4   용지 한 장 쯤의 여백은 고여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용지 위에 생을 압축한 간략한 언어 한 두 줄 쯤은 남겨져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러기에는 외롭다는 투정은 사치일 것 같다. 노년의 고독은 즐기면 행복이 되고, 괴로우면 불행이 된다 했기에.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 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와 깊이를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삶을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는 가치 있는 고적이요 적막감이다. 고독은 굳이 멀리하려거나 이겨내야 할 근거가 필요치 않다. 고독은 함께라는 공유화 의미가 짙다. 또한 창의성의 원천이 되어주곤 하기에 고독은 즐길 수 있는 차원까지 보유하고 있다. 외롭다거나 쓸쓸함 정도는 따돌릴 수 있는 경지로 묵상이나 사색 관조를 통해 창작의 기회에 몰입할 수도 있다. 고독은 손에 잡히지도 않거니와 보이지도 않는 것이지만 그 과정 속에 슬픔을 아예 배제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생을 비워내며 정결함을 추구할 수 있는 여백의 발견이다. 여백은 살아갈 수 있는 호흡의 여지를 제공해 주는 것으로 여백이 가진 독자적 범주 자체만으로도 홀로의 빈자리가 마련되는 소중한 기회라서 충분히 감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 곱고 갸륵하게 숨겨져 있다. 단순히 비어있는 공간 개념이 아닌 비어있는 공허함을 극복하고 즐기는 단계로까지 도달시켜 주었다. 고독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복닥거리는 일상에서 만나지 못했던 한 없이 넓게 펼쳐진 하얀 여백이 기다리고 있다.

여백이 허락해준 공간 만으로도 얼마든지 평온 하다는 느낌이 밀려든다. 넉넉하고 느긋한 여유로움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쉼을 얻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그렇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은 잡히지 않고, 군중 가운데서도 어쩔 수 없이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기에 고육지책이든, 팔자소관이든, 정당방위든 간에 일상에서 주어진 고독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영성 깊은 부분에 까지 터치할 수 있는 빌미까지 제공받게 해주었다. 고독을 승화시켜주는 통로에는 여백이란 공간미가 마중을 나와준다. 공간적 비어있는 상태를 극복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군중 속 외로움을 앓아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외로움과 고독을 논하지 말라는 논지에 동의한다. 인생 여정을 건너오면서 한 순간일지라도 외로움이나 고독을 자초하거나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심지어 생명 없이도 존재하는 바위 덩이도 슬픔을 풀어놓을 것 같은데. 해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롭다는 탄성의 신음을 생의 여로 곳곳에 묻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 여정이 아닐까 한다. 이런 말이 있다. 홀로의 고통을 표현하는 말은 외로움이고, 홀로의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 고독이라 했다. 해서 모든 인생들은 외롭게 태어나 세상과의 외로운 사투 끝에, 떠날 때도 혼자 외롭게 떠난다. 그러기에 고독의 유익을 일찌감치 심취해 왔던 것 같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오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했던 스피노자가 남긴 말이 떠오른다. 이 또한 고독이 주는 유익으로 받아들이라 한다. 세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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