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어느 날 수요 예배가 끝난 후 강단을 내려올 때 한 형제가 저에게 면담을 요청해왔습니다.
성도들을 모두 보내고 제 방에서 함께 대화를 시작 하였습니다. 저를 처음 만난 그 형제는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간절히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때 저는 되물었습니다. “간절히 살고 계십니까?”
저의 질문을 들은 젊은이는 먼 곳을 쳐다보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습니다.
신앙에 있어서 모든 요소들은 하나하나 동떨어져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하고 싶어하고 능력 있는 기도 생활을 이어가고 싶어 하지만 실패하는 이유도 바로 기도의 이러한 특성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기도는 전인적이고 전존재적인 활동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이 참여하는 영적 활동입니다. 거기에는 우리의 삶이 반영되고 마음이 토대가 되며. 사랑이 역사해야 하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간절한 애착과 아버지의 원하시는 바가 자신을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갈망하는 전인이 참여해야 합니다.
따라서 아무리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더라도 그 기도가 진정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바쳐진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기도자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이루지만 단지 기도하는 사람들, 열심히 간구하는 사람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기도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자신을 바친 사람을 통하여 이루십니다.
기도는 이 같은 전존재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단지 기도만을 간절하고 능력 있는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끝없이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마음과 삶과 하나님을 향한 관계는 도무지 고치려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신의 기도만을 고쳐 보려는 사람들이 기도 속에서 맛보는 끝없는 거절감과 부르짖어도 영혼의 울림이 되지 아니하는 실패를 조금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간절히 간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된다”는 교리의 한 조각을 붙들고 기도한다 할지라도 그 축복 스러운 교리가 자신에게 적용되지 아니하는 현실을 아는 데는 불과 몇 달도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대 방향에서 생각해 보면 제대로 변화된 기도는 반드시 그 거룩한 영향이 기도하는 사람의 전존재에 미칩니다.
그러므로 세속을 사랑하는 마음. 구별되지 아니한 헌신, 의심하는 마음, 악을 버리지 못하는 집착, 마음이 나뉘는 것 등은 모두 능력있는 기도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의 기도 세계 속에서 추방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거룩한 일이고 거룩한 일은 거룩한 사람이 행할 때 그 영광이 가장 잘 드러나는 법입니다.
기도자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지 않으면 그는 간절한 기도로 그분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자신을 드린 가운데 기도에 바쳐진 사람으로 간구하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가운데 그 기도의 정신으로 거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삶은 도무지 바꾸려고 하지 않으면서 단지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기도의 세계만을 사모하는 것은 신앙이라는 이름의 탐욕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기도가 기도자를 만들고 기도자가 기도를 규정짓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