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이규 레스토랑

[삶과 생각] 늦게 피는 꽃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2-12 17:40:31

삶과 생각, 백인경, 버클리 문학회원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오래전이다. 나의 직원이 카페를 닫고 뒷정리를 하면서 진한 향수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우린 아마도 손님이 향수병을 엎지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향수 냄새는 더욱 진해졌다. 우린 매장을 샅샅이 살폈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어 참 묘하다 하며 고개를 돌리는데, 문득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서있던 나무 꼭대기에 하얀 꽃들이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향기는 그 꽃에서 나는 거였다. 

그 나무는 카페 오픈 하고부터 10년도 넘게 한자리에 서있었다. 키가 커서 거의 천정에 닿을 듯하고 잎이 무성해서, 꼭대기 잎 사이에서 핀 꽃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던 것이다. 난 그 나무가 꽃을 피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바로 인터넷으로 나무에 대해서 알아봤다.

이 식물은 7년에서 10년은 지나야 꽃이 핀다고 한다. 그것도 어쩌다 빛, 습도, 온도의 모든 조건이 잘 어우러져야 핀다. 대부분 피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 깊은 숙성을 거쳐서인지, 한번 피면 그 향기는 너무도 매혹적이다. 그것도 낮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는 저녁 때부터 꽃잎이 열려서, 밤에 진동하는 향기에 흠뻑 취하게 한다. 옥수수잎과 비슷해서 ‘corn plant’라고 하고 ‘행운목’이라고도 한다. 어렵사리 꽃이 피어서 그런지 꽃말은 ‘약속을 실행하다’, ‘행운, 행복’ 등이다. 실내의 공기 정화까지 해주는, 꼭 옆에 두고 싶은 식물이다.

꽃이 피리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핀 꽃, 은은한 하얀빛으로 전혀 화려하지 않은 꽃. 그 긴 세월동안 얼마나 정성을 들였길래 이토록 고혹적인 향을 품을 수 있을까! 긴 세월의 인고와 자신의 때를 위한 기다림이 느껴져 마음이 시큰했다. 그러면서도 온 마음을 다했다는 듯이, 수줍게 미소 짓는 모습이 오히려 더욱 아름답고 당당해 보였다. 가슴 뭉클한 경이로운 감동이었다.

우리는 인생의 긴 여정을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면서 같이 걸어간다. 하지만 각자의 삶은 서로 다른 조건 속에서 도전과 변화를 겪으며 자신만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간다. 고비 고비마다 실패의 어려움과 상실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으며 자신을 꽃 피우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면, 이를 통해 우리는 성장을 하고 변화를 통해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피어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꽃들은 각자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호박꽃이나 감자꽃이 화려하지 않지만 그 맺는 결실이 실하고, 행운목처럼 수수해도 향기가 진한 것처럼, 어떻게 우열을 가릴 수가 있을까. 따라서 자신의 꽃은 언제 어떠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날지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의 속도와 시간을 믿고 바르게 노력하면 자신만의 향기를 머금고 피어날 것이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꽃을 피우는 우리이기에 나눔과 소통을 통해 서로에게 풍성한 영감을 주고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딱 떨어지는 정답도 없고 더더구나 결론도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과정이기에 언제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아직 피지 못했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겠다. 봄에 흐드러지게 피는 꽃들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뜨거운 폭염아래 여름을 견디고 찬 서리 내린 뒤에야 고고하게 자태를 나타내는 국화꽃처럼, 조급하지 않으며 자신의 세월을 견뎌낸 행운목처럼, 늦게 피는 꽃이 더 향기가 진할 수도 있지 않을까! 

<백인경 버클리 문학회원>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행복한 아침] 세월 속에서 만난 새해

김정자(시인·수필가)     지난 해 연말과 새해 연시를 기해 다사다난한 일들로 얼룩졌다. 미국 39대 대통령을 역임하신 지미 카터 전 대통령께서 12월 29일 향연 100세로 별

[모세최의 마음의 풍경] 새로움의 초대

최 모세(고전 음악·인문학 교실) 새해의 밝은 햇살이 가득한 아침이다. 연휴에 분주하게 지내느라 새로움을 마주하는 희망찬 의지를 다질 새도 없었다. 새해부터 경건해야 할 삶의 질서

[신앙칼럼] 명품인생, 명품신앙(Luxury Life, Luxury Faith, 로마서Romans 12:2)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지금 조금 힘쓰면 영혼이 큰 평화와 영원한 기쁨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인생을 <명품인생(Luxury Life)>이라 과감하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리 혹스테이더 칼럼] 벼랑 끝에 선 유럽

유럽은 산적한 위협의 한 복판에서 새해를 맞이했다.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기존의 전통적인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들끓는 분노 속에 침몰했다. 경제는 둔화세를 보이거나 기껏해야 답보상태

[오늘과 내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가짐

작년 12월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을 떼면서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순간에 우리는 질문해 본다. 지난 한해 동안 행복하셨습니까? 후회되고 아쉬웠던 일은 없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정숙희의 시선] 타마라 드 렘피카 @ 드영 뮤지엄

굉장히 낯선 이름의 이 화가는 100년 전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매혹했던 경이로운 여성이다. 시대를 앞서간 아티스트이자 파격의 아이콘이며 사교계의 총아이기도 했던 그녀는 남자와 여

[에세이] 묵사발의 맛

꽃동네에서 먹은 묵사발은 생각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돈다. 처음 꽃동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수녀님들이 꽃을 많이 가꾸며 가는 동네일 것이라는 상상을 했었다. 사막의 오아시스라는

[시와 수필] 하늘 아래 사람임이 부끄러운 시대여

박경자(전 숙명여대 미주총동문회장)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한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삶과 생각] 천태만상 만물상

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 / 칼럼니스트)  인류사회와 인생사는 천태만상 총 천연색이다. 크고 작은 모양과 색깔 등 각기 다른 특성이 수없이 많고 또 장단점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전문가 칼럼] 보험, 그것이 알고 싶다- 메디케어 혜택의 A B C D

최선호 보험전문인 예전엔 어른이 어린아이를 보고 한글을 깨쳤는가를 물을 때 “가나다를 아냐”고 묻곤 했었다. ‘가나다’가 한글 알파벳의 대표 격이 되는 것이다. 영어에서도 마찬가지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