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설’ 이라는 이름으로 또 한 번의 새해맞이를 하게 되었다. 지난해 송구영신 세밑 끝에 새해 새 아침을 열게 되었지만 작심삼일이 되어버린 각오들을 상쇄할 수 있는 여지로 구정 설날을 맞으면서 새해 아침을 덤으로 얻은 기분이 된다. 떡국 한 그릇을 더 먹는 것으로 한 해를 다시금 열게 되었다. 설날이 돌아오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고향이요 그 추억이다.
유년의 설맞이는 설렘과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어머니께선 설빔을 손수 지으시고 장 속에 넣어두셨기에 수 없이 장을 열어보았던 명절 추억은 늘 감미롭고 달콤했다. 명절 음식이 수북하게 즐비해 있는 정경들로 달뜨게 만들었다. 설날 아침, 차례상을 물리고 집안 어르신들께 세배를 올린 아이들은 이웃집 세뱃돈 몰이로 몰려 다니다 공터에서 떠들썩하니 놀이판을 벌인다. 사내아이들은 제기차기, 썰매 타기로 흥겨워 하고 계집아이들은 알록달록 색동 옷으로 한껏 멋을 내고 널뛰기, 그네 타기로, 어르신들은 마당에 멍석을 갈고 윷놀이를 즐기셨고 아낙들은 방안에서 윷놀이로 신명을 돋우었다. 농한기 한가로움을 마음껏 즐기던 명절 풍속도는 숨가쁘게 내달아 온 삶의 현장에서 숨 고르기를 하며 재충전 기회를 제공받는 절호의 겨를을 얻어낸 셈이 된다.
이때 만큼은 전통시장이며 방앗간, 이발소, 목욕탕도 인파로 붐볐고 영화관 마다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북적대곤 했었다. 전란 후의 암울했던 그 시절에도 명절이 있었기에 가난에 짓눌린 서민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었던 시대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4.19와 5.16 시대 격변기를 거치면서 세대별로 기억하고 있는 설 명절 풍경도 다른 기억들을 간직하게 되었지만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건너오면서도 이웃이며 친족 간에 먹거리로 정을 나누었던 훈훈한 명절 모습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면서 민족 정서를 이어오고 있었다. 설날 변천사도 한민족 역사 따라 다양하게 흘러왔다.
고국에서 살아온 세월과 미국에서 보낸 시간이 맞물릴 만큼이 되었지만 아직 이 땅에는 고향같은 정감이 싹트지 않는다. 이방인으로 보내는 동안의 세월보다 훨씬 더 많은 사연과 애틋한 이야기들이 고향 흙 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나 보다. 이제 고향은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고향으로 남고 말았다. 고향이 멀어져 간지 오래다. 명절이 돌아오면 추억 속에서만 살아있는 고향으로 족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실향민이 되고 말았다. 가래떡 마냥 늘어진 세월이 헤아릴 수 없이 흘러갔는데 아직도 설날이 제대로 다 타지 못한 장작불 불씨처럼 추억 속에도 가슴에도 남아있는 것은 어인 연유일까.
명절 풍경은 기억 저 편에 단편적 편린으로 자리하고 있을 뿐이라서 유년의 추억 자락을 붙들고 유년의 추억 길을 거슬러 오르는 것이 전부다. 민들레 홀씨로 날아들어 먼 이국 땅에 민족 얼의 뿌리를 내리고 삶의 터전을 만들고 자손들의 대견한 성장과 이룸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기까지 이방 명절도 고향 명절도 편견없이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나그네로 뜨내기 심정이 되어 모방도 아닌 시늉도 더욱 아닌 대충대충 보내온 터다. 하지만 추석 한가위에는 그나마 송편을 빚어 보기도 하고 설날이면 떡국도 마련하게 되었지만 떡국을 먹어도 마음 한구석은 항상 허기진 이방인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한 객이요 길손이다.
우리네 아이들의 고향 추억은 어떤 풍경들로 저들의 추억 속에 자리하고 있을까. 생각에 잠기다 보면 부모 따라 고향을 떠나 이방 땅으로 들어선 철모르던 시절 어린 나이에 낯선 문화에 적응해가며 유년기, 청년기를 보내는 동안 고국의 고유한 명절도 이 땅 역사에 곁들여져 있는 이방 명절도 모두 낯선 추억으로 남겨져 있을 것 같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는 저녁이면 떡국 잔치로 윷놀이로 보냈던 시간들도 고운 추억 속에 담겨 있을까. 설 명절 주간이면 한복을 입고 교회 어른들을 찾아 뵈며 세배를 올리느라 몰려다녔던 추억도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을까. 설날 풍경이 떠오르면 어머니가 생각나고 고향이 어른거리는 시간 속에서 꺼내볼 수 있는 추억이 숨쉬고 있는데 우리네 아이들에게 떠오르는 고향은 어떤 정서로 비쳐질까. 고향은 세상 가운데 버려졌더라도 유일하게 되돌아 가고픈 어머니 품 같은 곳인데.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은 명절이 돌아오면 마음 깊이 간직된 고향 추억들을 반추하게 되는데. 우리 아이들 정서에도 나름의 고향이 정립되어 저들의 생애에 삶의 그루터기가 마련되기를 간절히 소망 드리게 된다.
들꽃 한송이를 보아도 고향 내음이 느껴지고 새들의 둥지만 보아도 고향 생각에 사무치 듯 몰두하게 된다. 양지바른 벤치에 포근하게 내려앉는 햇살에 매료되어 쉬고 있을 때도 고향은 느닷없이 떠오른다. 고향은 보드랍고 따뜻하고 편안한 훈기로 우리네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고 기진한 마음을 포근하게 보듬어줄 고향 생각에 도취되게 만든다. 고향은 생이란 집을 지어가도록 모퉁이 돌이 되어주기도 하고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하루를 다하고 돌아와 지친 몸을 녹일 수 있는 온돌방 따스한 아랫목 같다. 객지를 떠돌아다니면서도 추위를 덮을 수 있도록 두툼하게 껴입은 외투 같기도 하다. 어쩌다 고향 방문길에 오를 때마다 고향을 찾아보면 길도 낯설고 남아있는 옛 사람도 드문 편이라 고향은 옛 고향이 아니었다.
이국에서 만나는 설날이면 고향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설날 아침이 밝아왔다. 새롭게 맞는 새해 새날을 덤으로 다시 한 번 더 맞이하게 되는 감사와 기대가 세뱃돈처럼 신나고 반가운 날이다. 추억 속에서만 만나지는 고향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