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예수님의 모형론적 인물(模型論的 人物, Typological Person)을 성경에서는 <다윗>임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해답이 삼상 25:29에 있습니다.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과 함께 생명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삼상 25:29). 아비가일이 다윗에 대하여 고백한 지혜의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생명은 생명싸개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하나님과 함께”라는 말로써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생명의 근원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극명히 잘 드러낸 말씀입니다.
생명싸개가 하나님이심을 집중적으로 표현한 말씀을 다윗 이후에 가장 잘 드러낸 인물을 성경 가운데 찾는다면, 그는 초대교회의 “대사도 바울(The Great Apostle, Paul)”입니다. 바울은 인생의 허무와 실존을 삶을 통하여 터득한 현실 속의 사람이요, 역사 속의 사람입니다(빌 4: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래서, 그가 겪은 삶은 허구(虛構)가 아니라 실제(虛構)이며, 이론이나 추상이 아니라 현실 중의 현실이며 삶 중의 삶입니다. 그는 생로병사의 인생굴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상의 전세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생명싸개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으며 지금도 그 생명싸개 안에 있고 장차 죽음 이후에도 하나님의 생명싸개 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아날 것을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먼저 쓴 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이 바로 고전 15:10말씀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인생을 한 단어로 “수고”라 표현하였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가 하나님의 생명싸개에 분명히 싸여있지만 그 생명싸개를 절감할 수 있는 것은 수고의 삶 속에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수고의 삶을 이기고 감내할 수 있는 통로를 “하나님의 은혜”라 표현하였습니다. 맥스 루카도는 ‘인생의 생명싸개를 감싸고 있는 생명보자기 혹은 생명보호막 같은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의문점을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당연히 받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 그 이상이며,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정체는 바로 사도 바울이 평생의 삶을 회고하며 인생궤적의 총결론을 “은혜”라고 하였습니다.
영성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는 “십자가에 달린 도둑을 용서하고 천국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생명싸개를 구체적으로 소개했는데 그것은 바로 “자비”와 “은혜”입니다(눅 23:41~43). 아 켐피스는 더욱더 세밀하게 말하기를 “자비는 십자가에 달린 도둑을 용서하였습니다. 은혜는 십자가에 달린 도둑을 천국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극적인 인생이 최고의 행복을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만났다는 것이 영원히 사라질 그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싸개로 감싸지는 축복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두 생명싸개는 “자비와 은혜”입니다. 아비가일이 죽음의 예리한 칼날 앞에 서 있는 어리석은 남편의 생명을 구한 것이 자비인것처럼, 허무와 실존의 두 갈림길에서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그리스도의 자비와 은혜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하게 하시는” 생명싸개 속의 생명이신 예수님의 참제자, 사도 바울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삶이 “수고”라는 울타리 속에서 비록 평생을 걸어갈지라도 오늘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는 “나의 나 됨”을 깨우쳐 주시고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