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세계에는 무수한 ‘저주’들이 떠돈다. 어떤 구단이나 팀이 오랫동안 우승을 하지 못하거나 성적이 형편없으면 그 이유를 팀에 불만이나 원한을 가진 누군가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돌리려는 심리작용으로 이런 이야기들이 만들어져 회자되는 것이다.
팀의 부진과 우승 부재는 구단 소유주와 프런트의 판단 미스와 선수와 감독의 실력 부족 등 온갖 악재들이 복합적으로 쌓인 결과임에도 ‘저주’라는 단어 하나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자신들이 아닌, 외부에서 찾으려는 ‘귀인 오류’의 한 형태이다. 대부분은 재미와 흥미의 소재로 여기지만 일부 팬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가장 유명한 저주는 ‘밤비노의 저주’(Curse of the Bambino)이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 삭스가 1920년 당대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베이브 루스(밤비노)를 뉴욕으로 트레이드 시킨 후 21세기 들어설 때까지 월드시리즈에서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던 불운을 일컫는 말이다. 레드 삭스는 1918년 월드시리즈 이후 86년만인 2004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며 이 같은 저주를 끊어냈다.
‘밤비노의 저주’와 함께 메이저리그를 오랫동안 맴돌았던 또 하나의 저주는 시카고 컵스에 퍼부어진 ‘염소의 저주’였다. 1945년 컵스의 리글리 구장에서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월드시리즈가 열리던 날 빌리 시니아스라는 시카고 팬은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다 제지를 받자 “염소를 경기장에 들이지 않으면 다시는 리글리 구장에서 월드시리즈가 열리지 않을 것”이라는 악담을 퍼붓고 돌아갔다.
그의 ‘저주’ 탓이었는지 이후 컵스는 단 한 차례도 월드시리즈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6년 월드시리즈에서 클리블랜드와 7차전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면서 비로소 염소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이런 저주들이 있다면 NFL에는 ‘바비 레인의 저주’(Curse of Bobby Layne)가 있다. 초기 NFL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의 스타 쿼터백이었던 바비 레인은 1958년 시즌 도중 갑작스레 피츠버그로 트레이드가 됐다. 아무런 사전 언질도 없었던 트레이드에 충격을 받은 레인은 구단을 떠나며 “앞으로 50년 간 디트로이트는 우승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불만과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바비 레인의 저주’ 때문이었는지 디트로이트는 그가 떠난 이후 60여 년 동안 거의 매년 바닥권 성적을 거두며 팬들과 다른 팀들의 조롱거리가 돼 왔다. 공교롭게도 ‘바비 레인의 저주’가 나온 지 꼭 50년이 되던 지난 2008년 시즌에는 16전 전패라는 참혹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다행히도 올해는 모처럼 정규시즌에서 12승5패라는 성적을 거두며 NFC 챔피언십에 진출해 65년 만에 드디어 저주를 끊어내는 것 아닌가 하는 팬들의 기대를 모았지만 아쉽게도 지난 28일 샌프란시스코 49ers와의 경기에서 31대34로 패했다.
그런데 이 경기를 지켜 본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저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은 기세 좋게 시작해 24대7로 앞선 채 마쳤다. 하지만 후반 들어 와이드 리시버들은 가슴에 정확히 배달된 볼을 놓치기 일쑤였으며 러닝백은 펌블을 해 공격권을 상대에 헌납했다. 갑자기 다른 팀이 돼 버린 것 같았다. 결국 무기력한 경기 끝에 패했다.
어쨌든 이날 경기로 오는 11일 라스베가스에서 열리는 58회 수퍼보울에서 격돌한 두 팀은 샌프란시스코 49ers와 캔자스시티 칩스로 결정됐다. 시즌 성적과 팀 전력 면에서 일찌감치 최강으로 평가받아온 두 팀의 대결인 만큼 올 수퍼보울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그건 그렇고 디트로이트 라이온스는 언제쯤 ‘바비 레인의 저주’를 풀어낼 수 있게 될까. 28일 경기를 보니 레인은 저주를 쉽게 풀어줄 생각이 아직은 없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