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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결핍의 행복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1-26 08:21:12

행복한 아침, 김정자(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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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자(시인·수필가)  

 

 나라 전역이 폭우, 폭설, 한파로 힘들어하는 중이라 고작 며칠 비 오는 걸로 지청구하기가 민망한 한주간을 보냈다. 워낙 광대한 나라다 보니 연중 내내 가뭄 걱정으로 보내다가 12월부터 1월 우기가 되면 하루 건너 비가 내리는 지역이 있으니 말이다. 한파로 비로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 잦아진다. 실내에서 바라보는 창 밖 풍경과 우산을 들고 그 풍경 속으로 거닐어 보았다. 빗 속에서 만난 정경은 젖어있는 만상에서 생기가 느껴졌다. 이번 비가 봄비였으면 하고 빌어보게 될 만큼. 앵글의 피사체가 바뀌었을 뿐인데 고여 드는 생각들의 다름이 이토록 명확하게 판이할까 싶다. 

빗물에 흙탕물이 도로 위로 흘러 드는 걸 보면서 인터넷에서 본 비디오 한편이 생각났다. 물잔을 우리의 삶이라 생각하고 들여다 보는 상황 설정에서 간혹 흙 한 웅큼이 튀어 들어간 것 같은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 그 기억을 지우려고 흙 알갱이들을 물잔에서 열심히 수저로 퍼내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물은 뿌예지고 좀처럼 흙알갱이들을 다 퍼내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비디오 주인공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시간을 나쁜 기억을 퍼내려고 애쓰지 말 것이며 긍정적이고 행복한 기억의 맑은 물을 더 채워 넣으려는 지혜로운 시도 접근이 급선무일 것이라 했다. 참으로 단순한 이론인데 실제 실천은 쉽지가 않은 그래서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할 부분들을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었다. 결핍에서 기인된 기억들로 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일들이 번번히 발생하는 것이 인생 여정인 것 같다. 

모 저널 지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야기가 실린 적이 있었다. 첫 째가 차분하고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그 아이는 오히려 동생으로 인해 애정 결핍을 느끼고 부모 사랑을 받으려 동생 돌보는 일에 더 어른스럽게 행동한다는 상담자 얘기였다. 자랄 때도 다섯 남매 맏이로 시댁에서도 팔 남매 맏며느리로 보낸 내 모습이 오버랩된다. 누나, 언니로 누가 부추긴 것도 아닌데 너무 빨리 커버린 아이로 살아왔던 것 같다. 나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무심결에 책임감을 심어주지는 않았는지 마음이 무겁다. 좋은 부모되기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그러기에 어떤 모습으로 든 어떤 여건에서 든 결핍을 느끼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마음에 머문다. 단순히 눈 앞에 보이는 부족감 혹은 어릴 적 추억 속의 결핍, 나만 없는 것 같은 물건 혹은 절대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지위, 명예 등으로부터의 불안감, 자신감, 소질, 능력 부족으로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인생들은 절절이 바라보는게 아닐까. 물질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을 은근히 질시하곤 했지만, 그들도 나름의 결핍을 느꼈을 것이고 나 역시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채움을 찾아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기에 결핍을 원망하거나 질타할 수 만은 없음이다. 결국 부족함을 느끼고 노력하거나 아니면 받아 들였을 때 만족과 행복이 다가오기 마련이니까. 남존 여비 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 여자 아이로 태어나 결핍이 시작된 여인에게 축복의 보상 또한 남다르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였기에 결핍의 행복이 가져다 준 은혜를 날마다 감사드릴 수 있게 된 것일 게다.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보이는 결핍보다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더 많다. 기억 속에서도 결핍이 있고, 대화 속에서도 결핍의 한계가 느껴지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결핍도 있기에 어떠한 결핍에 시달리고 있으며 그 결핍을 위해 무엇을 심고 있는지를, 나아가서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를, 다듬어 보려는 여백을 가져야 결핍이 행복으로 유턴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인의 삶 속에 끼어드는 관계의 결핍과 무너져가는 멘탈 회복을 위해 순환하는 계절의 풍요와 조락을 눈 여겨 보려 한다. 계절이 드나드는 발소리에서 풍요를 얻어내 듯 숨겨진 조락까지 결핍의 결여와 약점 진단을 위해 홀로의 시간을 마련하여 결핍에 찌든 마음밭을 경작하듯 갈아엎으며 관계의 조락까지도 뒤엎어 풍요의 씨앗을 뿌린다면 종국엔 결핍의 행복이 깃들 것이고 이를 누리게 될 것이다.

아직 만나고 싶은 가슴아린 그리움이 있기에, 아직 주고 싶은 마음을 못다 준 아쉬움이 있기에, 아직 찾지 못한 길이 있고, 아직 채우지 못한 아련함이 있지만, 아직 완성하지 못한 한 편의 시(詩)같은 결핍은 생의 여정을 이어가는 과정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기에 인생길이 한 없이 힘들고 어려울 때도 힘이 되는 보루가 되어줄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결핍, 애통하는 자의 결핍,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결핍, 옳은 일을 하고도 박해 받는 자의 결핍에 이르기까지 결핍의 행복이 산상 수훈에 숨겨져 있었음에 남은 날이 더 짧음에도 갈수록 감사가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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