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해맑은 겨울 아침이다. 영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겨울 창가에 섰다. 창틀 프레임에 고여있는 고정된 풍경처럼 인식되지만 순간도 머무른 적이 없기에 번번히 창가에서 다가서곤 한다. 고층 주거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겨울 풍광이 빚어낸 삽화 운치에서도 영하 기온이 체감된다. 매일 다가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무미건조한 삶을 반복 하는 인생 들에게 시간은 끝없는 미세한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풍경을 연출해 내고있다. 위풍당당 겨울 카리스마 위세 앞에 바깥 출입은 아예 접어두고 시리도록 푸른 한 겨울 삽화에 젖어 든다. 나 목의 빈 가지들이 방풍처럼 마을을 품고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며 살아가는 분주한 도심을 안고 있다. 거미줄처럼 엮어낸 길들이 도로로 이어지며 가로등과 가로수가 켜켜이 마을을 휘감으며 늘어서 있다. 차갑고 음산한 회색 겨울 풍경이 삭막 하긴 하지만 그마저도 오밀조밀 정겹다. 겨울 삭풍에 몸을 떨고 있는 나무 가지 끝자락에 걸린 시간 마저도, 아슴푸레 흘러가는 우리 마을 고요가 평화롭다.
햇살이 하도 다사로워 창을 열자 바람이 몰려든다. 촉감은 매섭지만 소리는 맑다. 꾸미지 않은 천연의 음률로 고저 장단에 강약도 섞여있어 나름의 화음을 연주하 듯 밀려 왔다 밀려가곤 한다. 물리학적 음파로 생성된 마찰음인데 마찰에는 통증이 수반되는 것이라서 바람이 아파하는 신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무한 창공을 휘돌아 다니느라 허공 잡이 고충이 허황된 떠돌이 마냥 들떠있다. 허공에서 내뱉는 울부짖음으로 뿜어내는 발성이요 몸부림의 토로이다. 인생들이 찌든 현실에서 빠져나오려는 반사 음이 빚어낸 탄식의 한숨 소리인 듯도 해서 언뜻 겨울은 서러운 계절 같다는 생각이 밀려드는데 저 만치 보이는 교회 종탑이 클로즈업으로 마음을 파고든다. 보이지 않는 바람의 흐름 속에서도 인생들은 쉼없이 주어진 삶에 열중하고 있다. 주어진 길이도 분량도 모른 체. 파도 같은 바람의 춤사위도, 빈 가지들의 묵묵한 기도도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기적이요 축복이다.
나뭇가지 끝으로 스며든 여명이 대지를 깨우고 하루 맞이 채비에 분주 했지만 영하의 하루 시작은 운무가 걷히 듯 시간 마저도 천천히 흘러 평온하게 하루가 열리고 다함 없는 소재로 겨울 삽화를 그려가고 있다. 추위가 유난한 날이라 그런지 보고 듣는 일과들이 막막해 지면서 멀리 유배당한 기분이 이럴 것 같다는 감회가 깔린다. 살다 보면 생각대로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는 것처럼 마음이 쉽사리 가다듬어 지지 않을 때면 세상 살이 또한 녹녹하지 않았고, 반짝이는 불 빛 같은 소망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왔을까, 또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라는 의문 부호가 떠나지 않는 의구심이요 부메랑처럼 번번히 되돌아오곤 하는 연민의 질문이다. 반어 법적 우문을 안고 겨울 바람의 고뇌를 알 것 같은 묵직한 마음이 되어 창 밖을 응시하고 있다. 미동 없이 빈 가지를 품고 있는 나 목들도 제 자리를 지키고 서있고, 곤고한 소리를 내고 있는 신축 공사장도 추위와는 아랑 곳 없이 타워 크레인은 근무중이다. 바람에 깃발처럼 펄럭이는 공사장 가림 막이 세상을 향한 상흔의 호소처럼 파탄, 상실로 촉발된 고통을 묘사한 입간판처럼 보인다.
인생 여정을 지나다 보면 육신에 이상이 생겼을 때 아픔을 느끼고 호소하게 된다. 필자의 경우에는 정말 아픈 것은 마음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조차 이탈된 사람으로 치부 받는 아픔도 물론이려니와 아무에게도 아무것에도 도움을 줄 수 없는, 아픈 이들의 손을 잡아 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아픔이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기억 줄에서 멀어진,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느껴진다. 잊혀진 줄 알았던 그 향내가 부질없이 촉감 된다. 가끔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처럼 위축된 마음 문이 여닫이 없는 문처럼 반응할 때가 있다. 따뜻하고 훈훈한 회복의 경험이 어쩌면 흔하지 않은 기적일 수도 있겠다 싶다.
지구가 앓고 있는 기상이변이 휘몰아 칠 때 마다 하루 하루를 기적 같은 시간들을 부여 받았음에 감사를 잊지 않았어야 했다. 나라 전체가 동상에 걸리는 재난의 마지막이 되기를 빌어본다. 창을 통해 비쳐오는 겨울 삽화 풍경과 이 모진 겨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힘든 시간을 축복의 대열로 선회하려는 의지가 곧 축복일 것이다. 하늘로서 내려지는 오늘 하루 축복을 내 것으로 안착시켜 두기 위해 묵상의 시간을 마련하려 한다. 아울러 낡은 프레임에 담긴 겨울 삽화의 소리 없는 아우성의 근원을 위해서도. 잠시 겨울 일리스트로 취해 있는 동안 내 안의 속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행운을 얻게 되다니, 모진 겨울이 건네준 생의 지침서를 받은 축복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