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6일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태어난 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그를 기리기 위한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DJ는 평화와 화해·통합의 정치 리더였다. 자신을 암살하려 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영화 ‘서울의 봄’으로 재차 회자되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마저 품에 안았다.
그의 담대한 행보는 개인적 소신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정세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정략적 계산도 깔려 있었음은 물론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그저 딴 나라 얘기처럼 느껴지지만 말이다. 제1야당의 대표가 백주대낮에 목에 칼을 맞는 충격적인 사건을 접한 가운데 맞이하는 ‘DJ 100년’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그저 자신과 정치적 지향이 다르다고 살인 행위까지 서슴없이 감행하는 ‘정치 괴물’의 등장은 현재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대립·증오·편가르기 정치의 말로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압축판이다.
정치 테러가 벌어지자 정치권에서는 진영을 떠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씨앗을 뿌린 정치권이 스스로 반성하는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타협을 거부하는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립, 그리고 이를 확대재생산해 가짜뉴스를 서슴지 않고 만들어내는 정치 유튜브, 이에 휘둘리는 극렬 지지자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공격한 60대 김 모 씨 역시 이 같은 환경에서 잉태됐다. 그는 평소 소심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정치 얘기만 나오면 돌변하며 정치에 상당히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살상력을 높이기 위해 범행 도구를 직접 제작까지 했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특히 김 씨는 4일 구속영장 심사를 받기 위해 부산지법에 출석한 자리에서도 취재진 카메라를 향해 전혀 고개를 숙이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하고 경찰에 ‘반성문’이 아닌 ‘변명문’을 제출했다고 밝히는 등 시종일관 반성조차 없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의 당적이 국민의힘이냐, 민주당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본질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와 정치 지향점이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척결’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결국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정치적 확증 편향이 불러온 비극이다.
국민의힘·민주당 내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지도부 또는 주류 세력은 그들과 다른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4월 총선을 앞두고 탈당이 이어지고 있고 당 대표 출신들까지 뛰쳐나와 신당을 만들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민주주주의 기본은 다양성이다. 그리고 이는 다름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화이부동(和而不同)과 구동존이(求同存異)의 자세다. 여기에서 타협이 나오고 공존과 공생이 시작된다.
이것이 정치다. 진영으로 나뉘어 싸울 땐 싸우더라도 어느 순간에서는 한 발짝 양보하고 대의를 향해 과감히 상대방과 손을 잡는 행위.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정치를 ‘타협의 예술’이라고도 표현한다.
정치권은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나만 옳다는 그릇된 사고에 빠진 정치 괴물이 태어날 씨앗을 뿌리고 그 토양을 만든 원죄 때문이다.
진정성 있는 반성문을 쓰는 자가 올 4월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있다. ‘두 번째 생명’을 얻은 이 대표 역시 국민을 향한 첫 일성은 반성과 화합·용서의 목소리여야 한다. 이 대표의 쾌유를 빈다.
<한영일 서울경제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