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앞마당 잔디 울타리는 동네 개들의 공중변소이다. 주인에 이끌려 산책하는 견공들이 코를 들이박고 킁킁대고는 찔끔 방뇨하고 간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녀석이 있는지 확인하고 제 체취를 보강하는 짓거리다. 모든 들짐승들도 마찬가지여서 배설물이나 털을 흩트려 영역을 표시하고 교미할 대상도 유혹한단다. 일종의 자기과시 본능이다.
영장동물인 인간의 자기과시 역사도 유구하다. 4만 년 전의 동굴 벽에 원시인들이 돌로 긁은 흔적이 발견됐다. 이집트와 로마의 고대유적에서도 돌기둥이나 벽에 긁어서 쓴 사람 이름들이 발견됐다. 고고학자들이 이들을 ‘긁혀진 것(scratched)’이라는 뜻의 라틴어 ‘그라피토(graffito)’라 불렀다. 오늘날엔 복수형인 그래피티(graffiti)가 주로 쓰인다.
요즘 그래피티는 개인주택이나 공공시설의 벽 또는 담장 등에 허가 없이 스프레이 페인트로 마구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려 재산피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총칭하며 거의 모든 나라가 ‘반달리즘(vandalism)’으로 처벌한다. 5세기경 게르만족 부류인 반달족이 서쪽으로 이동하며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는 잘못된 ‘사실(史實)’에서 기인한 용어이다.
원래 그래피티는 무 개념의 일반 낙서와 구별됐다. 나름대로 목적의식이 내재한다. 사냥작전을 그린 원시인들의 동굴 그래피티는 인류예술의 효시라는 말까지 듣는다. 벽을 긁어서 흠집 낸 그래피티가 거의 모두 커뮤니케이션 용도였다. 로마 명소인 카타콤(지하묘지)의 그래피티도 기독교 공동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반달리즘과 차원이 다르다.
힘들게 긁지 않고 페인트로 금방 완성하는 미국식 그래피티는 1960년대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 주로 전철과 화물열차들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대개 갱단의 명칭을 표시한 ‘태그’(소형 낙서)였지만 곧 ‘매스터피스’로 대형화됐다. 내가 1978년 한국일보 뉴욕지사를 찾아갔을 때 전철 창문들이 온통 페인트로 칠해져 밖이 내다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런 행위를 본인들은 그냥 ‘글씨 쓰기(writing)’라고 했지만 저명한 문화평론가 노먼 메일러와 뉴욕타임스가 이를 ‘그래피티’로 격상시켰다. 당시 미국사회를 뜨겁게 달구기 시작한 힙합문화의 아류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술성 인정여부가 미국에서 논란이 된 가운데 그래피티는 힙합문화의 등에 업혀 유럽, 남미, 동남아 등지로 퍼졌다.
지난주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이 반달리즘을 당해 일시 폐쇄됐다. “가자를 해방하라”는 친 팔레스타인 구호가 층계 등에 빨간색 페인트로 휘갈겨 쓰여 있었다. 국립사적지인 이 기념관은 2017년에도 쌍욕 낙서피해를 입었었다. 나흘 전엔 인근에 있는 국부 조지 워싱턴의 기마동상도 화강암 대좌에 똑 같은 형태의 모방 반달리즘 피해를 입었다.
이보다 앞서 한국에선 경복궁 돌담이 16~17일 잇달아 스프레이 페인트로 훼손돼 발칵 뒤집혔다. 국보 1호인 숭례문(남대문)이 2008년 한 노인의 방화로 전소된데 이어 이번엔 청소년들이 연 이틀 문화재를 훼손했다. 체포된 첫 번째 범인(10대)은 누군가가 돈을 준대서 저질렀다고 했고 두 번째 모방범인(20대)은 재미로 했다며 경찰에 자수했다.
특히 두 번째 범인은 자신이 예술을 한 것이라며 “안 미안하다”고 말했단다. 미국 물을 좀 마신 모양이다. 뉴욕 시는 전철낙서를 지우는 데만 연간 5,200만 달러를 쓴다. LA도 2,800만 달러를 각종 낙서제거에 투입한다고 들었다.
이런 아이들을 엄벌하지 않으면 세계최고의 서울 지하철이 언젠가 뉴욕이나 LA 지하철과 비슷한 몰골이 될지도 모른다.
<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