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는 50여 년 전인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공산당 주석 사이에서 극비 밀사로 정상회담을 도출해낸 국제관계 책사로 유명하다. 핑퐁외교로도 알려진 미중관계의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는 미국과 구소련과의 냉전 속 균형을 맞추는 데탕트를 조성한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그가 지난달 11월29일 100세 나이로 별세했다.
그리고 바로 그 전날 또 한 명의 거성이 유명을 달리했다. 세계 최고의 부자인 워런 버핏의 평생 사업 파트너였던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도 99세를 일기로 28일 별세한 것이다. 100세 생일을 한 달가량 앞두고 이승과 이별한 그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이자 세계인들에게 동업의 성공 방법을 일깨운 인물이었다. 멍거 부회장은 1976년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으로 취임한 지 1년 만에 그의 정식동업자가 된 바 있다.
매년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시에서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 연례 주주총회에서는 수천 명의 주주이자 팬들과 함께 만나는 의식을 거행해왔다. 버핏이 1인자였다면 그는 영원한 2인자, 그러나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실력자의 아이콘이었다. 멍거 부회장의 재산은 약 23억 달러 정도로 추정된다고 한다.
환갑은 이제 더 이상 노인정에서 눈길도 안주는 나이다. 환갑이니 성대한 생일상을 해드리자 하는 노인공경의 시대는 가버렸다.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요즘, 누구나 100세 시대를 노래한다. 기술혁명으로 평균 수명이 늘면서 백세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른바 백세문명에 우리 모두 진입한 것이다.
하지만 거동도 못하면서 백세를 산다는 것은 최악의 불행이 아닐까. 하체의 힘이 없어 욕조에 넘어져 죽는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싫다. 준비 없이 맞이하는 백세시대는 저주일 뿐이다.
세계 최초로 초고령화 시대를 만들어낸 일본의 사례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실감나는 2023년 연말이다. 65세 이상이 인구의 14%이면 고령사회이고 20%가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는 사회학의 기준선이란 게 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일본의 인구 구성은 30%에 육박하고 있다. 여기 한인사회도 마찬가지다.
베이비부머들은 대부분 은퇴해 건강한 제2의 청춘들을 살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딱 100이라는 숫자는 완성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만큼, 다들 정말 백세라는 마라톤을 잘 달리고 있다. 하지만 최근 백세 인근에서 화려한 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경우가 잦은 것을 본다.
여하튼 지금 70세인 사람은 100세까지 무려 30년의 시간이 남은 셈이다. 다시 말해 한 세대를 더 살 수 있는 나이란 뜻이다. 백세시대 길라잡이가 필요한 지금이다. 치매 같은 질병으로부터 정신건강 유지는 물론, 다양한 부상방지 예방법도 배워 놓아야 한다.
동시에 품격 있는 삶을 위한 인생설계법과 아름다운 죽음을 위한 방법에 이르기까지 백세를 우아하게 맞을 수 있도록 인생 후반부 항해를 위한 또 다른 차원의 한인사회내 공동체들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에서 불린다는 ‘백세시대’라는 노래가사에는 우리 모두 백세를 향하여,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이라는 소절이 있다. 백세시대를 축복으로 누릴 수 있도록 지금부터 인생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하자.
단순히 오래 살자는 의미를 넘어 백세가 된 나이에조차도 공부하고 창조하는 모습. 지금까지 인류가 익숙했던 삶의 주기가 완전히 달라졌고,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 전 뜻있는 분들과 ‘빅애플’이란 작은 모임을 만들었다. 내게는 이 소중한 모임이 백세시대 프로젝트가 될 수도 있다. 40년 전 도착한 뉴욕에서 백세시대를 맞는다면 그것은 인생에 크나큰 축복이 되지 않을까.
<민병임 뉴욕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