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고국엔 지금이 김장철이다. 고국을 떠나올 때 까지만 해도 김장 문화는 건재하고 있었다. 입동이 지나고 김장철이 들어서면 온 가족이, 동네 이웃들이 모여 김장 담그는 모습이 지금은 만나기가 힘들게 되었지만 김장 김치는 우리네 백의 민족에게는 소중한 고유의 전통 음식이요 전통 문화다. 김장 김치를 담그는 날이면 김치보시기를 들고 이집 저집 나눔으로 분주했던 그 시절의 김장이란 몇 날을 견뎌야 하는 힘든 노동이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동네 아낙들이 함께 모여서 김장하던 정겨운 풍경들이 점차 사라져 가는 것이 아쉽다. 김장 김치 속에 담긴 포근한 정이, 후한 인심이 오가면서 품앗이 문화까지 더불어 이끌어낸 공신이다. 김치 냉장고가 등장하고 김치 공장이 들어서고 서양 음식이 식탁을 비집고 들어서면서 김치 지존의 자리는 조금씩 밀려나면서 제자리를 비우게 되었지만 매일 먹어도 식탁에서 보이지 않으면 서운해서 찾게 되는 음식이라 우리네 민족의 집집이 김치 없는 밥상이 어디 있으랴 싶다. 이방인의 삶이지만 한국인 밥상에서 김치가 없는 식탁을 찾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김치는 알맞게 적당히 숙성돼야 제 본연의 맛의 정점을 찍게 된다. 세상살이와 비견될 수 밖에 없는 전래 동화 같은 음식이다. 짠 소금에 절여지고 젓갈과 매콤한 고춧가루에 마늘까지 갖은 양념에 버무려져 자신을 숙성시킬 줄 알아서 비로소 진국의 제 맛을 낼 수 있게 됨을 안다. 절여진 배추는 맵고 짠 세월 속에서 인고의 시간 동안 숙성 되면서 제 맛이 들기 시작한다. 항아리 안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기다림과 참음의 시간을 극기하는 것도 한민족 정서와 제격이다. 조급하게 김치독에서 꺼내도 아니될 터이요 늦도록 독에 남아 있어도 맛을 놓쳐 버리기 십상이다. 버무려 놓은 양념처럼 일상에서도 마늘이 되고, 생강이 되고, 파가 되기도 하면서 양념이 어우러지 듯 세상과 어우러지며, 혼자서는 어떤 맛도 낼 수 없음을 일찍이 알고 있는 김치는 김장독 속에서의 고독을 삭히며 추위가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맛이 들어가는 김치를 지켜보며 어우러짐과 기다림의 미학을 인지하며 깊이 지각하게 된다.
배추는 밭에서 뿌리와 분리되면서 죽어지고 짠 소금에 절여지면서 또 한번 죽어지고 양념에 버무려지면서 다시 한번 까무러치고, 김장독에서 참기 힘든 숙성 과정 동안에 죽은 듯이 견뎌내야 한다. 배추는 이렇듯 여러번 죽어가면서도 우리네 밥상을 행복하게 해준다. 평생 먹어도 매일 찾게되는 밥도둑 김치의 일생이 우리네 생애와 다를 게 무얼까 싶다. 먹거리를 위하여 버텨온 희생으로 없는 살림에도 넉넉한 살림에도 귀천 없이 헌신해온 김치의 삶은 칭송감이다. 밥상을 풍요롭게 해줄 뿐더러 미각을 책임지는 유일하고 독특한 맛이요 고구마와 어우러지는 동치미는 생명까지 책임 져왔던 명의의 자리를 내주어도 무방할 것 같다. 연탄을 피우던 시절, 심심찮게 발생했던 연탄가스 누출사고 때마다 등장했던 동치미 위력도 김치역사에 한몫을 해왔다. 영양의 보고요 발효식품 김치가 세계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방따라 사용하는 젓갈이나 양념 맛에는 얼마간의 차이는 있지만 먼 옛 조상 적부터 우리네 밥상 곁으로 와서 여태껏 떠나지 않으며 우직하고 은근한 우리 민족 특유의 뜨거운 피의 내력처럼 꾸밈없는 무구한 역사를 담아오더니 기어코 한류 인기와 건강음식 선호 트렌드를 따라 전 세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세계인으로부터 면역력 향상 식품으로 자리잡은 것은 세계적으로 채식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주목 받게 되고 건강 트렌드로 인정받는데 한몫을 기여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류열풍을 몰고 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K-POP을 필두로 영상 문화, 음식 문화까지 대세를 이어가는 한국인의 묵묵한 행진이 영원하기를 빌어본다. 한국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 농수산 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 영국, 브라질 등 3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11월 22일을 김치의 날로 제정했다.
‘김치의 날’은 김치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지난 2020년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김치 재료 11가지가 모여 22가지 이상의 건강 기능성 효능을 낸다는 의미를 담아 11월 22일로 정해졌다. 김치의 날 결의안 통과와 건강한 지구환경을 위한 저탄소 식생활 실천 운동 확산에도 한몫을 하고있다. 지난 2021년 8월 캘리포니아주에 이어 버지니아 주, 뉴욕 주 등에서도 김치의 날이 제정되었다. 11월 22일을 ‘김치의 날 기념일로 정하자는 결의안이 12월 6일 미 연방하원 본 회의에서 처리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김치의 날’이 앞으로 전 세계로 확산 될 전망이 확실하다. 무엇보다도 김치 종주국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음에는 세계적인 학자와 전문가들은 물론 일반 외국인들 조차도 김치가 한국 전통 음식이라는 데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김치의 독자성과 독특성 그리고 고유성을 지니고 있음에 자부심을 갖고 농수산 식품 수출 강국으로 도약하여 K-FOOD 브랜드 가치를 높여가며 ‘김치의 날’ 확산을 통해 김치가 그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민족의 힘을 모아야할 때이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민족의 음식 문화에서 비롯된다.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김치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은 문화 교류의 긍정적인 사례로 삼을 수 있다. 이방인의 삶을 이어오면서 김치가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온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김치의 정체성을 지켜내며 전 세계를 향해 진일보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