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수확으로 감을 최고의 과일이라고 꼽지 않을 수 없다. 동화책에서도 오성과 한음의 지혜로운 이야기에도 감이 나오니 얼마나 흔한 감나무였을까? 그만큼 감은 오래 전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과일이다.
26년 전 롱아일랜드에 이사 와서 지인에게 선물 받은 묘목으로 배나무와 감나무를 심었다. 남편과 나는 깊게 땅을 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 지 그땐 알지 못했다. 구덩이에 심은 감나무의 뿌리는 가족들의 정성과 기도로 잘 자라주었다.
몇 년 후 배나무는 실패를 했는지 계란만 하게 열리다 죽곤 했다. 그런 나무를 베지 못하는 건 아직도 살고자 해마다 잎이 나오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비록 더 이상 자라지 않아 먹을 수가 없을지언정…. 토양이 문제라고 늘 생각하면서 감나무만이라도… 하며 기도하며 영양분을 주며 바라보는 내 눈은 간절함으로 가득했다.
몇 년쯤 지나 감나무 가지에 새싹이 틔듯 조그맣게 푸른 감의 형태를 갖추며 주홍빛 감을 17년 전에 첫 수확을 했다. 그때 마침 미국을 방문하신 어머니에게 첫 감을 따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어찌나 좋아하시던지 아이를 안듯 손에서 놓질 않으셨다.
해마다 열리기도 하고 해걸이를 하며 한 해는 100개가 열리더니 또 다른 해는 40개 정도만 열리기도 했다. 수확하는 늦가을엔 먹을 만큼 열린 감을 사다리에 올라가 따는 재미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지 않았을까?
감나무는 가지가 약하지만 여린 가지에도 주렁주렁 달린 많은 감을 품을 만큼 강한 모습을 가르치곤 했다. 따지 못하는 꼭대기에 있던 감들은 새들에게 주는 까치밥이라고 나눠 먹어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었다.
팬데믹이 생긴 후부터는 감이 열리지 않아 몽우리가 생기다 그만 떨어져 버린다. 약한 녀석이 떨어진 거라고 다른 녀석들을 기대했는데 마찬가지로 떨어져 더 이상 감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가 되고 말았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식물에게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열매가 안 열리니 감나무를 새로 심을까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땅을 파야하고 삽질을 해야 하는 일에 자신이 없다.
감나무를 심고 십 년은 기다려야 감이 열린 것으로 기억되는 일에는 인내심이 한계가 온다. 그런 귀한 단감이 요즘은 홍시가 되고 곶감이 되어 제철이 아닌데도 먹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홍시도 곶감도 어찌나 맛있던지 어머니가 젊은 나이 때부터 홍시를 좋아하셨는데 그런 말랑거리는 감을 왜 먹냐고 철없던 딸의 말에 어머니 마음을 상하게 했던 건 아니었는지 비로소 홍시를 먹으며 어머니 생각을 한다. 그땐 이가 아파 그런 걸 이해 못 했을 것이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처음 먹어 본 홍시를 먹으니 어머니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울컥 한다. 입에 넣으면 눈물처럼 순식간 녹아 감동이 이는 그 맛이다. 나도 어머니처럼 중년이 되어 이가 아파 홍시가 입에 맞는다.
어머니의 유전처럼 닮아있는 내 모습에 홍시가 서글픔으로 온다. 올해도 감은 열리지 않는다.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이 오면 눈 맞을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깊어가는 가을, 비가 내리고 겨울이 가까워지면 이맘때쯤 감이 열리던 그때가 그립다. 감나무는 어머니의 한숨처럼 온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그립다. 감도 어머니도.
<김미선/롱아일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