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대통령제를 채택한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다. 지금이야 많이 쇠퇴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2차 대전 이후 많은 신생 독립국이 탄생했을 때 미국은 민주주의의 표상이었다. 아마 한국뿐 아니라 많은 신생국이 미국의 대통령제를 벤치마킹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대통령제를 답습한 국가 대부분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대통령제를 고안한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제도를 운용해왔다.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1776년 7월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온전한 자치권을 가진 13개 주의 연합체로 작동했다. 물론 13개 주의 연합도 중앙정부를 설립해 운용했지만 행정권이나 사법권을 행사할 수 없는 매우 허약한 중앙정부였다. 독립을 쟁취한 후 곧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유럽의 열강과 맞서야하는데 안보도 취약했고 각 주가 각자의 주법에 따라 국제 교역을 하다보니 혼란이 발생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3개 주의 대표는 헌법을 제정하고 발효시켜 1789년 지금의 연방정부를 설립했다.
미국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는데 당시 유럽 전제국가의 왕이나 여왕같이 나라를 대표할 ‘국가원수(chief of state)’가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라를 대표하라고 만든 헌법기관이 대통령이다. 하지만 권력의 집중을 극도로 혐오했던 미국 건국의 설계자들은 대통령이 유럽의 군주처럼 전횡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매우 약한 대통령직을 만들었다. 그 하나의 방법이 행정부로부터 입법권을 분리해 연방의회에 부여하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의 설계자인 제임스 매디슨의 인식은 “공화정에서는 입법부가 필연적으로 우세하다”는 것이었다. 미국 헌법 제1조가 대통령과 행정부가 아닌 의회의 구성과 권한을 먼저 다루고 있는 이유가 있다. 실제로 미국 건국 초기에는 의회 지도자가 대통령을 ‘서기장(chief clerk)’ 정도로 취급한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가 아닌 의회중심제로 시작했다. ‘견제와 균형의 제도’ 또는 ‘권력 분산의 제도’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허약했던 미국의 대통령직이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임기 이후에는 의회에 비해 더 강력해졌다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미증유의 대공황 위기를 맞아 의회와 주 정부가 대통령과 연방정부에 많은 권한을 자발적으로 이양했다. 2차 세계대전과 이어진 냉전의 안보 위기도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한 계기가 됐다. 뉴딜 정책을 추진하고 냉전을 치르면서 수많은 정부기관이 설립됐는데 모두 의회가 아닌 대통령과 행정부가 관할했다. 이렇듯 건국 초보다 현재 미국 대통령의 권한이 한층 막강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정치적 역학 관계를 비교적 관점에서 봤을 때 미국 대통령은 여전히 허약하고 미국 의회는 세계에서 제일 강력한 입법기관이다.
‘권력의 분산’과 ‘정책의 효율성’은 상당 부분 상충 관계를 이루고 있다. 대통령제는 후자 대신 전자를 선택한 제도다. 그러다보니 하나의 정책 아이디어가 실제로 정책화되기까지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과정을 거쳐야한다. 권력을 분점한 국가기관과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합의를 도출할 때만 정책이 집행될 수 있게끔 고안돼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오바마케어를 법제화해 실행에 옮기기까지 꼬박 8년이 걸렸다. 자신이 속한 정당인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비효율적으로 고안된 대통령제하에서도 효율적으로 정책성과를 올린 미국 대통령이 다수 있다. 이러한 대통령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통령학 권위자 리처드 뉴스타트에 의하면 대통령의 힘의 원천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 아니라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이 명령만 일삼는 ‘최고 통수권자’의 역할이 아니라 ‘최고 소통가’의 역할을 잘 수행할 때 권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